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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세상읽기] 탈북민 신변보호제도가 의미하는 것 / 황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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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경찰이 담당하는 탈북민 신변보호관제도라는 것이 있다. 평소에는 언론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이 제도가 올해 세가지 사건 기사에서 언급됐다. 한 탈북민의 월북이 있었고 그 상황에 대해 신변보호관이 모르고 있었다며 비판이 이어졌다. 한 ‘대북 전단 살포’ 탈북민은 신변보호를 빙자한 감시를 중단해줄 것을 요구했다. 신변보호관이 본인을 상당 기간 성폭행했다며 한 탈북민은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오래전부터 비슷한 관행이 존재했으리라 쉽게 추측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신변보호제도가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법률의 위임 없이 ‘신변보호’를 시행령에 규정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를 작년에서야 법률에 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변보호에 필요한 사항’은 통일부 장관이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등과 협의해 정하도록 백지위임하고 있다. 5년이라는 과도하게 장기적인 신변보호 기간은 사실상 무기한 연장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신변보호는 법률 문언상 탈북민의 ‘신변안전’ 보장만을 의미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탈북민 신변안전 보장, 감시, 정보 획득, 사회적응 지원 등 탈북민에 대한 전반적 감시, 관리 등의 의미로 실행되고 있다.

폐지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온 보안관찰제도가 있다. 내란죄, 간첩죄 등의 범죄자를 형 집행 뒤에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긴밀한 접촉을 가지고 항상 그 행동 및 환경 등을 관찰’하고 ‘사회의 선량한 일원이 되는 데 필요한 조치’(보안관찰법)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신변보호제도는 탈북민 모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보안관찰’제도로 사실상 작동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신변보호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가 상당수 보고됐는데, 유형별로는 사생활 침해가 가장 많았고, 정서적 침해, 신체적 침해, 성적 침해, 방임적 침해 등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보안’의 관점에서 탈북민의 공적, 사적 생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여러 인권침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탈북민들은 대부분 신변보호관제도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민원상담소, 때로는 해결사로서의 신변보호의 관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안’ 작용을 위해 권한도, 책임도, 전문성도 없이 탈북민 삶을 전방위적으로 관여하는 신변보호의 관행이 지속되어야 할 사회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위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신변보호관에게 도움을 받은 유형은 취업·창업, 직장 생활 관련이 가장 많고, 신변위협 요소 제거 및 신변보호, 정서적 문제 해결, 경제적 문제 해결, 주거 문제 관련 등의 차례다. 대부분 본래 의미의 신변보호와는 무관한 내용임을 알 수 있고 탈북민들이 신변보호관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구조를 볼 수 있다.

경찰청에서는 이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감시, 국가안보 중심의 국정원·경찰 주도의 신변보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미 충분히 왜곡된 제도와 관행으로 존재해왔고 개선된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폐지가 답이다. ‘신변보호’를 위해서는 긴급대응시스템의 구축, 탈북민에 대한 충분한 사전 안내, 핫라인 개설 등이 갖추어지면 된다. ‘안보’와 관련된 부분은 철저하게 법적 근거를 가지고 필요한 경우 별도로 내사, 수사하는 절차를 거치면 된다. 신변보호관의 ‘민원해결사’ 역할은 현존하는 사회보장,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것을 통해 대체, 보완하면 된다. 모든 탈북민을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하고 모든 탈북민에 대하여 장기 혹은 무기한 감시, 통제를 해야 한다는 발상은 결별해야 할 과거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정부에 불만을 품으면 사회 불안요소가 되기 때문에 모든 국민을 감시,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한 탈북민의 월북 사건 직후, 신변보호관이 왜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적 반응은 놀라웠다. 탈북민들은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는, 상시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어왔던 것은 아닐까. 수십년간 특별한 손님을 맞이해온 현실이 이렇다면 뭔가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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