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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오늘의시선] 공정하지 않은 ‘공정경제 3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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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없는 ‘공정경제’ 용어

경영계와 소통 없이 일방통행

정부가 공정경제 3법을 개정한다고 하면서 공정경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공정경제란 말 자체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아무도 거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단어다. 그러나 법이나 혹은 정책적인 차원에서 찬찬히 뜯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첫째로, 공정경제란 말의 법적인 근거가 없다. 우리 헌법 전문이나 어느 조항에도 공정경제란 말은 없다. 비슷한 게 있다면 시장지배력과 경제력의 남용을 막는다는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과 그것에 바탕을 둔 공정거래법 제1조의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 방지,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된 공정경제의 개념적 테두리일 것이다.

세계일보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경제학


그러나 이 조항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자는 것이므로 공정경제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내어놓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의 개정 혹은 제정을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하자는 주장이 마치 공정경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특히 경제계나 야권에서 이번 정부가 내어놓은 3법 개정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공정경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프레임을 씌워서 폄훼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도를 수정한 것은 매우 옳은 방향이다. 오래전부터 전속고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각계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이제야 폐지한다고 하니 매우 때늦은 감이 크다. 그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번 조치는 너무 편협하다. 대상 거래를 극히 좁혀서 경성담합에만 국한한 것은 공정경쟁을 보다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구축하자는 법 취지에 매우 옹색한 결정이다.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옳다.

셋째, 감사의 분리선출제도도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된다. 관행상 대주주 의사에 부합되는 이사 중에서 감사를 선출하는 것은 감사를 두는 근본적인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적용대상을 ‘일정 규모(2조원 자산) 이상의 상장회사 혹은 자산 1000억원 이상의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으로 국한했다는 점이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상장사가 아닌 모든 민간 기업과 모든 공기업의 감사선출은 감사 분리선출 규정을 적용받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헌법에 규정한 경제민주화에 부합되는가? 상장기업만 적용되고 비상장기업이나 공기업에는 적용하지 않으면 이건 공정한 경제인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감사를 선임하는 경우,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산하여 3%, 일반주주도 3% 내에서만 의결권을 행사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3% 미만의 의결권을 지닌 여러 일반투자자가 ‘담합’을 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이 규정의 취지를 우회하여 경영과 감사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매우 크다. 특히 특정 금융사 혹은 모펀드의 사실상 지배권 아래에 있는 여러 자펀드들이 담합하여 감사를 선출하는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재계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특히 우려하여 투기적 펀드의 경우 3% 룰을 적용하지 않거나 특수관계인합산을 허용하는 등 예외규정을 두거나 신축적인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3법 개정은 양방향 소통이 전혀 없는 일방통행 조치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서 밝혔듯이 먼저 “국무위원의 심의를 거치고,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다음 국회에 제출하여 국회와 재계 등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법률의 개정 취지와 주요 내용 등을 설명하는 등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도록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순서가 아주 잘못되었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계와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해야 했다. 그리고 재계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 시정사항을 충분히 반영한 다음에 국무회의에 올리고 국회 제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것이 민간부문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항구적인 공정경제를 이룩하는 길이다. 정부의 말마따나 공정경제는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축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과 같이 미리 결정하고 따라오라는 식의 짓누르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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