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5 (토)

[매경춘추] 예술가의 기억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완전한 기억이란 가능할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사물의 인상을 재구성해 기억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매일 온갖 매체에서 쏟아내는 사회적·정치적 쟁점의 핵심에도 기억에 관한 문제가 들어앉아 있다. 아무개가 어느 곳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그곳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이를 놓고 거친 공방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종국에는 법적으로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잦은데, 그런 과정을 듣거나 보게 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역시 나름의 정보로 사건과 사고를 기억하게 됨으로써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된다.

기억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경기도미술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세월호 참사에 관한 여러 가지 일이 그것이다. 경기도미술관은 경기 안산 화랑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다. 250명의 희생자를 낳은 단원고등학교가 미술관 2층 복도에서 바로 보이는 근접거리에 있다.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그 학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2014년 4월 이후 경기도미술관은, 희생자의 가족으로 구성된 '세월호가족협의회', '정부장례지원단'과 긴 동거에 들어갔다. 정부합동분향소가 미술관 바로 앞 광장에 자리 잡게 되었기에 협의회와 지원단에 사무실을 내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만 4년의 시간을 안산에서 보내면서 아직도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에 대한 생각의 갈래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인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였던 바로 그날에 '사월의 동행'이라는 전시를 경기도미술관에서 개막했다. 22명의 예술가가 그 뜻을 같이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경기도미술관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예술행동아카이브'와도 협업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건축, 사진, 디자인,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사건을 담아낸 예술가들의 행동을 메타 아카이브로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대의 중심인물이었던 강신대 작가는 아카이브 리서치와 수집에 집중해 '416실시간'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세월호와 관련된 키워드로 검색되는 온라인 이미지를 랜덤하게 보여주는 미디어 작품이다. 경기도미술관은 사진 아카이브인 '아이들의 방'도 전시했다. 이 작품들은 단원고 희생 학생의 빈방과 유품을 기록한 사진기록이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사진가들은 기억의 반대말인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부재와 그들이 떠난 뒤의 공백을 기록하고자 했다.

조소희 작가는 '봉선화기도 304'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세월호 희생자 숫자를 상징하는 304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리고 34개월 된 어린아이부터 96세인 할머니까지 미술관을 방문해 작가와 함께 가운데 손가락을 봉선화로 물들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봉선화의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를 마음에 새기며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예술가의 기억법이다.

[최은주 대구미술관 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