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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재계는 "다 죽는다"는데… 학계가 보는 ‘공정거래 3법’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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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공정경제 3법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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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은 그간 미흡했던 규제망을 보완해 기업 지배구조를 바로잡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경제단체와 재계의 반대 목소리가 날로 커지면서 일부 조항은 재논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24일 기업 지배구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표적인 논란거리인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등에 대해 기본 취지와 현실적 한계를 잘 구분해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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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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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엘리엇 사태’ 나올까


상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다. 지금은 먼저 이사를 선출한 뒤, 이 중 3명 이상(사외이사가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개정안은 이 중 최소 한명을 별도의 '감사위원'으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감사위원을 뽑을 때는 한 주주에게 최대 3%의 의결권만 주어진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아도 소수 주주가 회사를 견제할 감사위원을 뽑을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펀드가 과거 시도했던 것처럼 소수 지분을 이용해 자기 편의 감사위원을 앉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엘리엇은 2019년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3명의 감사위원을 추천했다가 투표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지만 법 개정으로 감사위원을 따로 뽑게 되면 이들의 ‘공격’이 성공할 수도 있다.

학계에서는 개정안이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선임한다”는 입법 취지를 잘 살릴 제도라고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이미 금융회사에서는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있으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만 적용돼 남용 여지도 적다는 이유가 거론된다.

다만 감사위원 선출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특수관계인 지분 포함 3%’로, 일반 주주는 ‘당사자 지분 3%’로 제한하는 것은 최대주주의 의결권만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도 상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최대주주와 그 밖의 주주를 구분해 의결권 제한에 차등을 둘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모회사 주주가 왜 자회사에 ‘딴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도 쟁점이다. 상장회사(A)의 자회사인 비상장회사(B)가 경영을 제대로 못해 A사 주주에게 손해를 끼쳐도 B사 경영진 책임을 추궁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도입되는 제도다.

재계는 이 제도가 허용되면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를 간섭해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고, 주주간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한국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경우가 많다”며 “모회사 주주가 모회사 이익을 위해 권한을 행사하더라도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이익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분율 50%를 초과한 자회사’만 다중대표소송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다만 이에 대해 지분율 30%까지 확대해야 한다(경제개혁연대), 지분율 기준을 99%로 높이자(대한상의) 등의 의견이 나와 조정의 여지가 있다.

안상희 대신기업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현재 50%인 기준이 완전자회사인 100%에 가까이 간다면 기업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줄어들까


공정거래법 개정안 가운데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가 쟁점이다. 현재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총수 지분율 기준으로 상장사(30%)와 비상장사(20%)가 다른데, 이를 ‘20% 이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여기에 규제 대상 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도 규제 대상이 된다.

현재 210개인 규제 대상 회사는 법이 바뀌면 388개나 더 늘어난다. 이에 총수일가가 지분을 20~30%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일부 매각할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상의는 국회에 지주회사 소속 기업 간 거래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분율을 높이라고 하면서, 지분율이 높을수록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규제 대상이 되더라도 ‘부당한 내부거래’만 사후적으로 따지는 것이어서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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