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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시시비비] 디지털 뉴딜 정책과 성공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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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적 충격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비대면 등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 혁신을 위해 D.N.A.(Data-Network-AI) 생태계를 강화하고, 교육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 교통·수자원·도시·물류 등 기반시설의 디지털화 추진 등이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관련 인프라 구축은 시의 적절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만으로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을 촉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낡은 비즈니스 모델을 자동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대한 믿음을 가진 기업이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 우위를 가지고자 할 때 어떻게 경쟁에서 밀리는지 '파괴적 혁신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인텔의 경우 수십 년간 노트북과 데스크탑 용 칩을 판매해 높은 수익을 거뒀다. 다만 인텔은 전력 소모량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칩을 설계했다. 당시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은 전원에 꽂아 사용하거나 충전하지 않고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의 조그만 회사였던 ARM이 설계한 전력 소모가 적은 칩은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0년대 스마트폰 혁명이 발생하면서 시장이 바뀌었다. 소비자들은 하루 종일 사용하면서도 가벼운 모바일 기기를 원했다. 이에 따라 인텔 제품의 약점은 극명하게 드러난 반면, ARM 제품의 효율성이 새로운 품질 기준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기존 제품의 기능만 개선해 새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인텔은 거대한 모바일 기기용 칩 시장에서 초기의 ARM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이와 달리, 독일계 철강 유통회사인 클레크너(Kl?ckner & Co)는 철강 산업의 위기에 직면하자, 철강 산업의 디지털화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의 정신과 관행을 받아들여 내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애썼다. 이 결과, 세계적인 철강 유통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산업에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고 있다. 시장의 큰 변화가 예상될 때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장점에 집착해 강력한 변화 가능성을 무시하고 기존 틀 안에서의 변화에 집중한다. 혹은 시장의 변화를 목격하고 과잉 반응한다. 변화의 방향과 그 속성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변화하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으로는 달성하고자 하는 혁신에 근접하기 어렵다.


디지털 뉴딜 정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계되고 운용돼야 한다. 공급 위주의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혁신의 한계는 뚜렷하다. 수요 측면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떠한 방식으로 산업 전반을 혁신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IT솔루션의 공급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지만 제조 공정과 같은 일하는 과정에서의 방법과 세밀하게 결합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정책의 역할은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단순히 조정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의 편익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혁신에 장애가 되는 법과 제도의 혁파 없이 정책 과실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혁신은 감독과 통제 속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디지털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경쟁하는 방법에 대해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광범위하고 빠른 학습과 이를 통한 통찰을 반영해 디지털 뉴딜 정책의 가치가 높아지길 기대한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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