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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타이 “왕실 개혁” 시위 최전선에 젊은 여성들이 뛰어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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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이후 남성 우월주의 심화” 비판

초기부터 시위 조직…참가자 다수가 여성

왕실 개혁 넘어 성차별 문제에도 목소리


한겨레

타이의 여성 활동가가 24일(현지시각) 수도 방콕 의회 앞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1932년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이행한 ‘시암 혁명’ 기념명판 모양의 스티커를 마스크에 붙이고,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두달째 계속되고 있는 타이의 반정부 시위에는 최근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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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방콕에서 두달째 계속되고 있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서 ‘젊은 여성’들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시위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들이 초기부터 시위를 조직하며 성차별 철폐적 관점에 입각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4일(현지시각)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초기부터 타이 반정부 시위를 조직해온 이들 중 다수가 여학생들이었으며, 최근 시위에서도 여성 참가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이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가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혈 진압이 벌어졌던 2010년 ‘레드셔츠’ 시위 당시에도 ‘아줌마 부대’라고 불리는 농촌 지역 여성들이 대거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시위에는 시위 지도층에 여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달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됐던 탐마삿대 학생 쭈타팁 시리칸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선 (지도층은) 대부분 남성이었다”며 “이제껏 타이엔 성 정치적 운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현 정권의 퇴진은 물론 왕실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그 근간에 뿌리 깊은 성차별이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실제로 타이에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 여성이 노동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주요 기관에서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타이 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고작 14%에 불과하다. 심지어 타이 왕립경찰사관아카데미는 지난해부터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왕실만 해도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문란한 사생활과 각종 기행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지만, 타이 왕위 계승은 남성 후손에게만 이뤄진다는 규정이 여전하다. 왕실 자문기구인 추밀원도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다.

한겨레

타이의 수도 방콕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각) 교복을 입은 한 여성이 ‘이 학생은 앞머리 등 머리를 기르는 등 학교 규정을 위반해 타이 학생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학교 당국의 두발 규제에 대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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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주요 단체 중 하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공동 창립자인 추마폰 땡즐리앙은 특히 “쿠데타 이후 타이 사회가 더욱더 남성 우월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2016년 직업교육 관련 연설 도중 “모든 이들이 정의를 이뤄야 한다며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간 타이 사회가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쁘라윳 총리는 또 ‘집안 지휘권은 여성이 가졌으니, 일터에선 남성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발언으로 여성들을 분개하게 만든 바 있다. 추마폰 대표는 이 점을 지적하며 “여성들은 지금 뒷전에 물러나 있지 않다.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시위 전면에 나서면서 시위 이슈도 확장되고 있다. 여성들은 남녀 임금 격차나 임신 중지, 생리용품에 대한 높은 세금 및 시대착오적 여성성을 강요하는 학교 교육의 문제 등 통상적으로 전국적 시위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가 곧장 폭넓은 지지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온라인에선 여성 활동가들의 외모 비하 및 평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9일 밤 방콕의 왕궁 앞에서 이뤄진 반정부 시위에선 “여성들이 참견하길 좋아해, 신이 그 참견을 효과적으로 줄이려고 여자들에게 약한 몸이란 저주를 내린 것”이라는 발언을 한 남성 활동가가 왕실 개혁을 요구한 여성 활동가보다 더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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