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3 (일)

"규제법 철회" 기업 호소엔 귀닫고…정부 "채용 늘려달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로 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업들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연내 마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노동 관련 법안들은 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게 징역형을 내리는 등 경영진 권한을 약화시키고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많아 재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5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30대 기업 인사·노무 책임자(CHO) 간담회에서 "노조법 개정과 관련한 경영계 우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국격에 맞도록 국제 노동기준을 준수하고 통상 리스크를 해소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지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노조법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ILO 핵심협약과 관련 노동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이 장관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내 노동 현실을 고려한 균형 잡힌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가 사실상 기업들에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관련 법안이 국회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런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재계 의견을 폭넓게 듣고 싶다면 법안을 국회로 보내기 전에 의견 수렴이 이뤄져야 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해고자·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이 가능해진다. 현행법하에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불법노조가 되지만 이 법령은 폐지된다. 이에 따라 합법과 불법을 넘어서는 노조 활동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는 "한국의 기업별 노사관계 관행을 고려해 기업별 노조의 임원 자격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으로 한정했다"고 밝혔지만 임원 자격을 한정하더라도 해직자들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막을 방안은 없다. 사실상 강성노조로 활동하다 해고된 이들이 '옥상옥'으로 군림할 게 명약관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 해고자의 복직을 위해 파업을 벌여도 막기가 어렵다. 해고자 복직을 위한 파업은 불법이지만 현행법은 이를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현행법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지만 노조의 부당행위에 대한 규정은 없다. 더 큰 문제는 실직자(구직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당 기업과 전혀 관련 없는 시민단체 등에서 해당 기업의 노조를 장악해 '기업별 노조'라는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재계는 ILO 협약 비준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인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가경제 위기와 산업경쟁력이 악화된 상황에서 노조의 단결권만 대폭 강화될 경우 대립적 노사관계의 악화와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으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또한 기업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우려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사망 사고가 났을 때 사업주와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이다. 사망 사고의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3년 이상 징역이나 5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사업주를 비롯해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도 처벌하고, 다중이용시설에서 일반 이용자가 죽거나 다쳐도 운영자를 처벌하는 등 처벌 범위가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보다 넓다. 법인에도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고, 전년도 수입의 10% 이내에서 벌금을 더 부과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형사처벌 관련 규정들은 최고치를 규정하는 게 일반적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상한 없이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며 "기업주만 처벌하는 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규정하고 있는 등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이 사전 예고도 없이 증권 분야에 한정됐던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오는 28일 국회에 제출한다고 발표하는 등 기업규제법 속전속결에 나서면서 재계는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기업규제 3법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재계는 기업규제 법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완 요구를 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앞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단체 대표들이 여야 대표를 만나 설득한 작업들이 사실상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등 관련 심사위원회 위원을 개별적으로 설득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음달 국정감사 직후 상법·공정거래법·노조법·중대재해처벌법·고용보험법 등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경영계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라며 "하지만 정치권의 반기업 정서가 워낙 강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노현 기자 / 김태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