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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軍은 자진 월북이라는데…北 통지문엔 "불법 침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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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국민 北총격 사망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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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북한이 통일전선부 명의로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는 22일 북측 해역에서 살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47)에 관해 비교적 상세한 북측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그러나 해당 통지문은 전날 우리 군 당국이 분석·발표한 사건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사건과 관련한 의문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 軍 "시신 불태워"…北 "부유물만"


매일경제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 측에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A씨(47)가 지냈던 선실의 모습. A씨의 친형은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 제공=실종된 A씨의 형]


북한 통일전선부 명의 통지문에 따르면 북한은 A씨를 총격으로 피살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을 해상에서 불태웠다는 말은 통지문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는 전날 군 당국이 발표한 사건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A씨를 피살하고 1시간여 뒤 방독면과 방호복을 입은 채 A씨에게 접근해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통일전선부는 통지문에서 이 같은 내용 없이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설명했다. 통지문에 이번 사건에 대한 상세한 경과 과정이 서술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시신 소각 내용이 빠진 것은 의문점으로 남는다.


◆ 北 "신원 얼버무리고 답변 안 해"


A씨가 의도적인 월북 의사를 갖고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는 우리 군 당국의 설명도 북한 통지문에는 누락돼 있다. 오히려 북한 측은 A씨를 불법 침입자로만 규정했다. 통일전선부 통지문은 "우리 측 연안에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며 "그러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북측이 사건 경위를 조사한 내용을 설명했다. 통일전선부는 "우리 측 군인들의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 두 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정체불명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다고 한다"고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일부 군인들 진술에 의하면 엎드리면서 무엇인가 몸에 뒤집어쓰려는 듯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도 했다"고 밝혔다.

A씨가 22일 북한 선박과 만난 뒤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우리 군 당국의 발표 내용은 통지문에 없었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통지문에서 "일방적인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든 표현을 골라 쓴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군 관계자는 "북한에선 선박에서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두고 방독면을 착용한 채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어업지도선에서 이탈할 때 본인 신발을 유기한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식별된 점 등 네 가지 이유를 근거로 A씨가 '자진 월북'했을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월북 의도 여부에 대해선 A씨가 실족으로 배에서 떨어졌고, 이후 북측으로 표류돼 북측 선박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짓으로 월북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도 "현재 우리 군 분석 결과 (자진)월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피격·소각 지시 누가 내렸나


A씨 사살을 지시한 주체 또한 통지문에는 불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통일전선부는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명시했다. '정장'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모호하지만 북한 해군정의 지휘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최고지도자, 즉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관련 사실이 보고됐을 것이고, A씨를 사살한 후 불에 태우는 것 또한 김 위원장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육군 군단장 출신인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4일 서 장관의 사건 관련 보고가 있었던 국방위 비공개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같이 경직된 사회에서 북한군이 자기 임의로 죽이고 불태우지는 못한다"며 "최고 정점의 짓"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직접 지시에 의한 사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대남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총참모부 선에서 사살 지시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민주당 간사)은 이날 박지원 국정원장이 참석한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 직후 "사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우리 군의 첩보를 종합한 판단과 일부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앞으로 지속적인 조사와 파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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