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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시신 훼손 부인한 北… 사격 명령도 일선 정장에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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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통지문’ 주요 내용 보니

“사격 후 확인 부유물에 침입자 없어"

"혈흔만 남아… 부유물은 바로 소각”

10여발 사격 관련 ‘정장 결심’ 강조

월북의사 밝혔는지 놓고도 의견 갈려

“신분 확인 불응” “일정 거리서 진술”

국방부·北 발표 달라 신뢰성 도마 위

세계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서해 해상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의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남측에 공식 사과를 했다. 사진은 지난 8월 정무국회의를 주재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25일 서해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지난 22일 북측 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 사건과 관련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전달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우려는 낮아졌지만, 북한 측 주장과 우리 군 당국의 설명이 달라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숨진 A씨의 월북 여부와 사살 지시자, 시신 훼손 등에 대한 설명이 확연히 다르다는 분석이다.

◆북한 “정체불명 침입자 사살, 부유물 소각”

북한이 이날 보낸 통지문에 따르면, 22일 저녁 황해남도 강령군 금동리 연안 수역에서 정체불명 인원 1명(A씨)이 북한 군인들에 의해 사살됐다. 해당 수역 경비를 담당하던 군부대는 이날 오후 어로작업 중이던 수산사업소 부업선으로부터 정체불명 남자 1명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부유물을 타고 강령반도 연안에 도달한 A씨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확인을 요구했지만 A씨는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곤 답변을 하지 않았다. 북한 군인들이 더 접근하며 두발 공포탄을 쏘자 놀라 엎드리며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다. 일부 군인들은 “엎드리면서 무엇인가 몸에 뒤집어쓰려는 듯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정장의 결심하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북한군은 40∼50m 거리에서 10여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사격 후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A씨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만 확인했다. 북한군은 A씨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현지에서 소각했다.

결국 북한군은 신분확인 요구→경고사격→조준사격으로 이어지는 대응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해상에서 표류하는 사람은 일단 함정이나 선박 위로 끌어 올려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관례인데 북한은 이런 선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북한 통지문은 김 위원장이 공개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구체적인 사건 경위에 대해선 우리 군 당국의 설명과 큰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통지문이 자신들의 잘못을 부인하는 형태라고 분석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해명은 박왕자씨 사건 때와 똑같다. 그때 북한은 박씨가 도망가려고 했고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원칙에 따라 쐈다고 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뭉뚱그려서 상식밖의 얘기로 표현했다. 모든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북한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경기 이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방부 발표와 확 다른 주장… 신뢰성은 미지수

큰 틀에서 보면 ‘부유물을 타고 북한 해역에 들어온 A씨를 북한군이 발견 후 총격, 소각’이라는 사건 과정은 북측 주장과 군 당국의 발표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선 적지 않은 차이점이 보인다. 구체적으로 숨진 A씨의 월북 여부와 사살 지시자, 시신 훼손 등에 대한 부분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데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 차이점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사건의 후폭풍을 차단하기 위해 ‘선긋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세계일보

①먼저 A씨가 월북 의사를 밝혔는지에 대해 남북의 의견은 엇갈렸다. 군 당국은 전날 “북한군이 실종자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지만, 북측은 월북 의사 표명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대신 “우리 측 연안에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불법 침입자’를 강조했다.

②사격 명령 주체가 누군가에 대해서도 북한은 ‘정장의 결심하에 사격했다’며 일선 군부대에 책임을 떠넘겼다. 즉 북측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라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 해군 지휘부를 포함한 상부로부터 사격 명령을 받았다”는 군 당국의 발표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경직된 북한 체제 특성상 단속정 차원에서 사살을 감행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상 표류자에 대한 인도적 조치 대신 사살을 감행한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의 책임은 부인했다는 분석이다.

③북한은 시신 소각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사격 후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어 접근해보니 A씨는 부유물 위에 없었고, 혈흔만 발견돼 부유물을 소각했다는 것이다. A씨의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는 군 당국 발표와는 다르다. A씨를 사살하기 전에 공포를 쐈다는 것은 군 당국의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다.

④총격 상황에 대해 북측의 설명은 매우 상세한 점은 주목된다. 북한은 “단속 명령에 계속 불응해 더 접근하면서 2발의 공탄(공포탄)을 쏘자 정체불명의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다”며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침입자를 향해 사격했으며 이때의 거리는 40∼50였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단속정과 A씨 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박수찬·백소용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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