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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魚友 야담] 추모 최인호, 추억 윤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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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어느덧 7년. 9월 25일은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기일입니다. 침샘암으로 투병하던 작가와의 이런저런 인연이 떠오르는데,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만화가 윤승운(77). ‘요철발명왕’ ‘맹꽁이서당’ 등 한국 명랑만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 작가와도 20년 전 인터뷰를 한 인연이 있습니다. 오랜만의 안부를 교환하다 고인과의 인연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짧은 글은 7주기 최인호에 대한 추모이자, 소설가와 만화가의 어떤 우정에 대한 소개이기도 합니다.

흔히 최인호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별들의 고향’을 떠올리지만, 사실 이 밀리언셀러 작가 최대의 히트작은 ‘상도’였습니다. 조선 후기 의주 상인 임상옥의 파란만장. 국내에서만 3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이자, 중국에서만 100만부가 나갔다고 하죠. 생전의 작가는 ‘상도’의 씨앗이 만화가 윤승운에게서 비롯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에세이 ‘가족’에서 최인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오늘날의 기업인들이 사표로 삼을 만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제목을 먼저 정했다는 것. 백방으로 후보를 고민하다 윤승운의 ‘한국의 위인’ 임상옥 편에서 전광석화 같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 즉시 수소문해 만화가를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자료는 빈약. 실망하며 발길을 돌렸는데 두어 달 뒤 두툼한 소포 하나를 받았다는 것. 그 안에는 윤승운이 발품 팔아 찾은 임상옥의 야사(野史)가 가득했다는 겁니다.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거라고 홀대받던 시절에도 윤승운은 자료를 바탕으로 인물·역사 만화를 그렸던 작가로 이름났습니다. 성균관 한림원에서 따로 7년을 공부했고, 따로 모은 역사책과 자료가 3000여권 있다고 했죠. 소설가는 자신보다 두 살 위였던 만화가에게 “그는 ‘상도’를 낳은 자궁이자 태반이었고, 창작혼의 심지에 불을 지핀 부싯돌이었다.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윤승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절입니다. 코로나로 고향 부모님 대면도 조심스러운 추석이지만, 사랑과 우정만큼은 계속 대면하는 추석으로 삼고 싶군요. 추석 연휴인 다음 주, ‘아무튼, 주말’은 한 주 쉽니다. 윤승운 선생의 말을 떠올립니다. “역사가 말해주는 건 하나야. 정직하게 살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면 돼.”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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