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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아무튼, 주말] 코로나 첫 명절 “돈아, 나 대신 효도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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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현금 선물, 3041명에게 물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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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얼마 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 붙은 현수막 문구. 코로나 시대에 맞는 첫 명절, 자식은 비대면이라 할지라도 현찰은 대면하고픈 부모 속마음을 재치 있게 담았다.

#2. “올해 추석은 용돈은커녕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할 것 같다. 자식들한테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고 아내가 말했다. 자나깨나 어린 손주들 걱정하는 아내는 내 돈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중장년층이 회원인 어느 인터넷 카페에 한 남성이 올린 글. 농반진반 푸념에 공감하는 이 적지 않다.

올 추석, 코로나 확산 방지라는 명목으로 ‘귀향 면제권’을 받게 된 자식들이 많아졌다. 몸은 편해졌지만, 맘은 복잡하다. 자식 도리를 선물로라도 대신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부동의 명절 선물 1위 ‘돈 봉투’가 올해는 더 힘을 받는 모양새다.

‘아무튼, 주말’이 명절 부모님 용돈을 둘러싼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와 함께 벌인 설문에 전국 30~50대 남녀 3041명이 참여했다.

◇전 부치는 대신 용돈 부쳐다오

“얘들아 올 추석엔 내려오지 말거라. … 힘들게 내려와서 전 부치지 말고 용돈을 두 배로 부쳐다오.” 얼마 전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이번 추석엔 총리를 파세요’라는 제목의 만화가 올라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등장시켜 이번 추석 귀향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만화를 본 주부 이진희(가명·47)씨의 반응. “정부까지 나서 명절 프리 패스를 끊어주니 고맙죠. 그런데 만화라지만 어려운 시국인데 두 배는 좀…(웃음).” 올 추석엔 전주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씨는 “보통 20만원 드렸는데 올해는 조금 더 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설문 결과 열에 넷 정도(37.7%)는 “코로나로 명절 선물 방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부모님 명절 선물 1위는 단연 ‘현금’. 59.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기에 ‘현금과 현물 같이’(15.6%)까지 합치면 75% 정도가 현찰로 ‘떡값’을 드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권(12.6%), 건강식품·과일 등 현물(11.3%)과는 차이가 컸다. 현금을 드린다는 응답자 중 14%는 “작년 추석보다 많이 드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현금 수요가 늘어난 만큼 시중에 풀리는 현금도 많아질 전망이다. 한국은행 발권기획팀 정복용 팀장은 “코로나로 내수 상거래가 위축되면서 현금 환수가 잘 안 됐다. 올 1~8월 화폐 순발행액이 1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올 추석엔 코로나 요인과 명절 현금 수요가 겹쳤다. 작년 추석 직전 화폐 순발행액이 5조원이었는데 올해는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발행준비자금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말했다.

현금을 선택한 이유(복수 응답)로는 부모님이 선호해서(56.5%), 부모님 취향을 고려하지 않아도 돼서(34.6%), 코로나로 인해 귀향하지 않아서(20.4%) 순으로 나왔다. 부모들은 왜 현찰을 선호할까.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여·78)씨는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입맛에 안 맞는 반찬 자꾸 준다고 생각해 봐라. 처치 곤란 아닌가. 우리도 똑같다. 자식들이 맘에 안 드는 선물 사주면 고맙다곤 하지만 속으론 차라리 현금 주지 한다. 세상에 현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며 웃었다.

“친정 엄마가 웃으며 그러시더라고요. ‘젊었을 때 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먹어보니 진짜 세상의 전부더라’고. 올해도 돈이 효도하게 하려고 합니다. 코로나니까 더더욱.” 워킹맘 윤모(39)씨 얘기다.

부모님 용돈 문화는 오랜 전통일까.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은 “전통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세뱃돈 주는 문화는 있어도 반대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부모님을 찾아뵐 때 예법으로 반드시 예물(禮物)을 가져가는 전통이 있었다. 예물이 농경사회 땐 햇곡식 같은 농산물이었다가 산업사회에서 설탕, 술, 햄 등 대량생산한 가공식품으로 바뀌었다. 현대 경제 사회에 접어들어 현금 가치가 올라가면서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현금을 드리게 된 것”이라며 “돈을 준다는 행위가 자칫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부모의 처지를 고려한 방식이라는 측면에선 형식이 바뀌었을 뿐 예법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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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추석, 부모임 용돈 어떻게 하나요


◇평균 시세 20만원

“추석 명절에 안 내려가는데 부모님 용돈 얼마 드려야 할까요?” 추석을 앞두고 요즘 맘 카페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다. 형편에 따라 개인차는 있지만 답변으로 보이는 평균 시세는 20만원 정도. 설문에서도 20만원이 1위(33.0%)였고, 그다음이 30만원(24.9%), 10만원(21.9%), 50만원(10.2%) 순이었다.

이구동성 ‘시작 금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맘 카페에선 “신혼 초 맞벌이에다가 돈 쓸 일이 많지 않아 양가에 넉넉하게 용돈을 드렸는데 애 키우면서 외벌이가 됐다. 경제적 부담이 있는데, 금액을 늘리지는 못할 망정 줄이려니 눈치가 보인다”는 하소연이 꽤 눈에 띈다. “처음에 되도록 적게 시작해 조금씩 올리는 게 현명하다. 시작 금액이 2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게 평균적인 유경험자들의 조언.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이정호(가명·38)씨도 “추석 때 점수도 딸 겸 예비 처가에 용돈을 드릴까 했는데 결혼한 선배들이 말렸다. 부모님 용돈은 물가 같아서 한번 올라가면 원상 복귀가 쉽지 않으니 무턱대고 드릴 게 아니다. 결혼한 뒤 배우자와 상의해 신중하게 드려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고 했다.

맞벌이 워킹맘 이모(39)씨는 “시댁, 친정, 제사 지내는 큰댁 어르신들까지 1인당 20만원씩에 조카들도 5만원씩 주다 보니 150만원이나 나간다. 명절 한번 지나면 기둥뿌리가 뽑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결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부모님 용돈은 한번 책정하면 백스텝 불가. 민망함은 순간이고, 손해는 영원하다! 첫 단추를 너무 높게 달지 마세요.”

◇부모님 봉투 따로 드린다

“평생 벌었는데 경제권은 마누라가 틀어쥐고 있어요. 애들은 우리 호주머니가 하나라고 생각하고 마누라한테 주는데 나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은 거의 없어요. 부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란 걸 애들이 알면 좋겠는데(웃음).” 대구에 사는 김모(70)씨는 “금액이 적어도 좋으니 이왕이면 자식들이 명절 용돈을 따로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요즘은 부모님 봉투를 각각 준비하는 이가 느는 추세다. 3년 차 주부 김현주(34)는 “시아버님, 시어머님 10만원씩 드린다. 처음엔 한꺼번에 드렸는데 각자 받는 걸 더 좋아하시는 눈치라 요즘은 따로 드린다”고 했다.

용돈 받는 부모들의 금기 사항이 있다. 18년 차 주부 이은정(47)씨는 “부모님이 다른 자식 앞에서 딴 자식이 얼마 줬다고 말씀하는 건 금물이다. 더 잘 버는 자식이 덜 드려 의가 상하기도 하고, 어려운 형편이 드러나 자존심 상하기도 한다”고 했다. ‘명절 용돈 문제로 형제와 다툰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7.8%가 ‘있다’고 답했다. ‘다른 형제가 부모님께 용돈을 얼마 드리는지 신경 쓰이나’라는 물음엔 52.1%가 ‘그렇다’고 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형제들끼리 공동 계좌를 만들기도 한다. 서울 사는 직장인 김준우(가명·37)씨네 삼 형제는 부모님 용돈 통장을 만들어 매달 각자 7만원씩 이체해 공동 관리한다. 김씨는 “함께 모은 돈으로 부산 사는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시면 식사비로 쓰고 명절 차례비도 드린다. 개인적으로 더 드릴지 말지는 각자 알아서 한다”고 했다.

‘배우자 몰래 친부모에게 명절 용돈을 드린 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46.8%. 절반 가까이 됐다. 양가 용돈 금액은 ‘똑같이 드린다’(48.7%)가 가장 많았고, ‘시댁(본가)에 더 많이 드린다’(9.8%) ‘친정(처가)에 더 많이 드린다’(9.5%) 비율은 비슷했다. 단, 30대에선 ‘친정(처가)에 더 많이 드린다’가 10.4%로 ‘시댁(본가)에 더 많이 드린다’(6.2%)보다 많았다. 30대 워킹맘인 김모씨는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느라 고생해 아무래도 조금 더 드리게 된다”고 했다. 한 전업 주부(33)는 “결혼하고 첫 명절에 남편한테 친정 부모님께 용돈 드리자는 말을 못 했더니 시댁에만 용돈을 드리게 됐다”며 “내 경제력에 따라 부모님 용돈도 차이나는 것 같아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각자 계좌를 관리하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부모님 용돈을 각자 알아서 하는 집이 많아졌다. 맞벌이인 김정인(가명·37)씨는 “자기 부모 용돈은 각자 알아서 챙기고 금액은 서로 노터치 하기로 했다”며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했다.

◇젊은 세대, 신권 신경 안 써

현금을 드리는 방법은 계좌 이체 30.1%, 모바일 간편 송금 6.1%이었다. 30대에선 간편 송금 비율이 9.0%로 조금 높았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명절 간편 송금 이용자가 점점 많아져 2017년부터 ‘한가위’ 송금용 봉투를 만들었다”며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할 땐 20대가 주 이용자였지만 요즘은 중장년도 많이 쓴다. 올 추석 때는 비대면 이슈가 있어서 이용자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용돈은 빳빳한 새 돈이어야 제맛이라는 생각도 저물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요즘은 현금 사용이 줄어 지점에도 현금을 많이 안 두는 추세인 데다 젊은 층에선 명절 용돈을 신권(新券)으로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다”며 “현찰로 직접 드리기보다 온라인 계좌 이체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 비율이 더 높아질 것 같다”고 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돌고 도는 게 돈”

“성의 없어 보이지만, 가장 깔끔하고 실용적인 선물.” 명절 부모님께 현찰 드리는 자식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현금 받는 부모 마음은 어떨까.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60대 남녀 1001명에게 물었다.

‘자식에게 명절 용돈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자식 마음이라고 생각돼 고맙게 생각한다’가 62.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이다. 뒤를 이은 대답은 ‘부담스러워 손주 용돈 등으로 돌려주려고 한다’(17.4%) ‘미안하고 눈치 보인다’(10.3%)였다.

경북 경주에 사는 이명희(68)씨는 “자식들도 빠듯한 살림에 주는 돈이란 걸 뻔히 알기에 어떻게라도 손주들 용돈으로 돌려주려고 한다. 그저 우리한테 잠시 스쳤다 가는 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추석엔 애들보고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손주들이 학교를 못 가 며느리도 고생하더라. 며칠 전 며느리 계좌로 손주들 명절 용돈을 조금 부쳤다”고 했다. 그는 “돌고 도는 게 돈이라는 말이 부모 자식 간에도 해당한다”고 했다. 강릉에 사는 이순희(68)씨는 “코로나 때문에 자식들이 못 와서 아쉽긴 하지만 친구들끼리 올해는 보너스(자식 용돈) 좀 받고 안식년 보낸다는 기분으로 명절에 모처럼 우리도 충전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손주 용돈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할까. 초등학생 손주는 2만~3만원(31.3%)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1만원(26.0%)이었다. 2.6%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중고등학생은 4만~5만원(35.1%)이 적당한 금액이라는 답이 가장 많다. 다음은 2만~3만원(25.7%), 5만~10만원(24.2%) 순이었다.

명절 용돈 문화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용돈 드리는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30~50대와 용돈 받는 부모 세대에 해당하는 60대 이상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미묘한 차이가 났다. 두 세대 모두 ‘형편에 맞게 한다면 괜찮다’는 답이 가장 많았으나, 비율은 30~50대가 54.1%, 60대 이상에선 65.9%였다. 부모 세대에서 좀 더 긍정적이다.

그다음 순위는 엇갈렸다. 자식 세대에선 ‘부담스럽고 없어졌으면 한다’(20.0%) ‘대안이 없다’(16.6%) ‘미풍양속’(9.3%) 순이었다. 반면 부모 세대에선 ‘미풍양속’(12.4%) ‘부담스럽고 없어졌으면 한다’(11.5%) ‘대안이 없다’(10.4%) 순이었다.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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