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뉴노멀-뉴 아메리카] 트럼프가 지더라도 트럼프 지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 유혜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75차 유엔총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영상은 사전 녹화된 것이다. UNTV 화면 갈무리.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뉴욕 타임스>가 경합주(swing states)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2016년 트럼프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의 86%는 오는 11월3일 대선에서 또다시 트럼프에게 표를 주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를 찍지 않겠다고 말한 유권자는 6%밖에 안 됐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미국 내 확진자가 700만명,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의 수는 지난 2분기에만 4천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7년 1월부터 임기 내내 43% 정도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방역 대실패,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 인종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트럼프의 태도 같은 건 지지자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2016년에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이 트럼프 후보가 표를 받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단단한 지지율을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인다.

자유무역을 선호하고 규제와 정부 역할은 최소화될수록 좋다는 자유시장주의자, 낙태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회·종교적 보수주의자, 그리고 워싱턴의 직업 정치인과 언론, 학계의 엘리트들을 잘난 척한다며 싫어하는 반엘리트주의자까지 트럼프 지지자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이다.

퓨리서치 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63%는 고등학교 학력 이하의 백인이었다.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쪽 26%와 크게 대비된다.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는 급변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제조업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0%였는데, 2016년에는 10% 언저리로 줄었다. 세계화와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고학력, 고소득 노동자들의 소득과 노동 기회는 크게 증가한 반면, 고졸 이하의 노동자들, 특히 제조업의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 삶은 더 어려워졌다. 소득은 정체됐고, 일자리 기회도 계속 줄어들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건강 악화와 약물 중독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45~54살 중년 백인들의 사망률은 지난 10년간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의 기대 수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치학·경제학의 연구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세계화로 인한 경쟁과 자동화의 가속화로 사라질 가능성이 큰 일자리의 사람일수록 이민자나 다른 인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국수주의적 성향의 극우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가피했던 현상은 아니다. 사회과학의 많은 연구들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제때 실업급여와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면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극단적 정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 막아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기민하지 못했고, 그 결과 사회 안전망도 효과적으로 구축되지 않았다. 실업급여 신청 과정은 복잡하고 지급은 더뎠으며, 문제를 지적해도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이민자나 중국을 공격하면서 유권자들의 분노를 이용해 자기 지지율을 보전하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삶은 그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마땅한 대안 없이 또 대선을 맞게 됐다.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로 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각해졌다. 경제 위기와 침체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는다.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세계화와 자동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트럼프 지지자들을 홀렸던 우파 포퓰리즘은 미국의 뉴노멀이 될 것이다.

한겨레

유혜영 l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