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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6명의 작가가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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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회 이효석문학상 시상식 ◆

매일경제

제2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됐다. 최윤의 대상 수상작 '소유의 문법'과 자선작 '손수건'을 시작으로, 정홍수 평론가의 '소유의 문법' 작품론 '무서운 의식의 드라마가 숨기고 있는 것'이 실렸다. 또 최윤 작가 인터뷰, 우수작품상 5인의 단편, 20회 때 대상을 받은 장은진의 자선작 '가벼운 점심'이 나란히 실린 속이 꽉찬 책이다. 공교롭게도, 작품집에 실린 단편 8편이 전부 화자 '나'의 진술로 전개된 1인칭 소설이란 점은 특기할 만하다.

'소유의 문법'은 은사 P의 권유로, 시골에 이사한 남성에게 렌즈를 대는 작품이다. 이사 후 P가 소유한 저택을 차지하려는 장과, 이해관계에 얽혀 장에게 동조하는 주민들의 이상한 심리를 그린다. "삶을 소유로 볼 것이냐, 존재로 볼 것이냐"(오정희 소설가)라는 물음이 직조됐다. 정홍수 평론가는 책에 실린 '소유의 문법' 작품론에서 "문법과 수사학 사이의 긴장과 불일치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는 무지 상태의 맹점을 포함하게 마련인 문학 언어의 숙명을 세련되게 활용한다. 인간의 자기 기만에서 자라나온 불안과 어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총평했다. 최윤 작가가 소개한 단편 '손수건'도 비의를 다룬다. N과 '나'는 이상한 전화에 시달린다. 미지의 음성이 스토킹임을 확신하는 순간 삶에 가시가 돋힌다. 스토커는 누굴까. '기다긴 시간이 우리 존재의 모든 모서리를 다 후렸다' '고난의 끝은 자주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다. 그 끝에서 늘 고백을 요청하는 잊힌 사건이 고개를 든다' 등 잘 벼린 칼날 같은 문장만으로도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다.

우수상을 받은 최진영의 '유진'은 이름이 같은 두 최유진과 이유진을 다룬다. 아르바이트생 시절 레스토랑 베네치아의 매니저 언니였던 이유진의 부음을, 최유진은 마흔을 앞둔 생일날 듣는다. 실체 없는 과거의 기억이 삶의 가교를 만들어내며 미래에의 의지를 재구성한다. 소설 각주에 실린 '나는 그 정도의 속도로 내 인생이 흘러가길 바랐다' 등의 문장에 밑줄 긋게 된다.

신주희 '햄의 기원'은 죽음마저 오브제로 삼은 예술가 이야기다. 예술을 열망했으나 무의미를 깨닫고 보험을 파는 '나'는 행위예술가 선배 '햄'의 소식을 듣는다. 햄은 광인 수준으로 미쳐가더니 말(馬)의 혈청을 수혈하고 충격적으로 죽어버렸다. 저주받은 예술가를 2인 더 등장시키며 신 작가는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유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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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품집`에는 최진영 신주희 박상영 박민정 김금희 소설가(왼쪽부터)의 우수상 수상작이 실렸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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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는 상실을 유전자처럼 갖고 사는 두 남성을 핑퐁처럼 오가는 '나'의 얘기다. 부도내고 도망 다니는 아빠는 허영심을 잃지 않았고, 마약으로 인생 망친 애인 원모는 강제추방 위기에도 별 대책이 없다. 그런데 허영과 무대책이 슬프다.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은 후암동 적산가옥에 살던 삼대를 다룬다. 그곳은 딸이란 이유만으로 버려져 국외로 입양돼야 했고, 폭력이 일상이었으며, 그 입양과 폭력을 당연시했던 가부장제의 무참함이 깃든 장소다. '나'는 유년의 처소를 쇠그릇 쇠냄새로 기억한다. 입양됐던 사촌 야엘이 귀국한다. 불우한 한국 여성을 다루는 젊은 작가 박민정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김금희 '기괴의 탄생'은 작곡과 교수 은파와 제자 '나', 그리고 '나'와 일하는 중년의 리애를 등장시켜 관계 맺음과 영속적인 단절을 이야기한다. 은파도 리애도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부터 절연된 상태의 인물이다. '어쩌면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다 날아가고 남은 건 희망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었을까'라는 문장을 다시 펼쳐들게 된다.

작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장은진의 자선작 '가벼운 점심'도 반갑다. 단수의 생에서 복수의 생을 선택하기가 불가피했던 한 남성과, 그를 아버지로 둔 아이의 만남을 그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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