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특파원리포트] ‘포스트 긴즈버그’ 두 시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트럼프, 보수 대법관 후임 지명

대선 소송 대비 사전포석 분석

美대법원 ‘색깔’ 변화도 관심사

10월 인사 청문서 윤곽 보일 듯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타계한 뒤 후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싸고 미국이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총기규제와 이민자, 낙태 등에서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법 판사를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배럿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상원 인사청문회는 다음달 12일 시작된다. 민주당은 ‘새 대통령이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상원 과반인 공화당이 11월 대선 전에 인준을 강행하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어 보인다.

세계일보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미 언론은 아이티에서 입양한 두 아이를 포함해 7명의 자녀를 둔 배럿 후보자의 보수적 성향 등을 전하면서 인준절차가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배경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은 ‘대선 전 마무리’를 목표로 진행되는 인준절차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불복할 것을 시사한 것과 관련이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확산하는 우편투표에 대해 사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개표 결과를 소송전으로 몰고 가면 결국 대법원 판단에 맡겨질 수 있다. 긴즈버그 생전에 보수5 진보 4였던 대법원 구성은 배럿 대법관 인준 후 6대 3으로 보수 쪽으로 완전히 기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관련 소송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기대하고 후임 인선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투표를 둘러싼 소송 가능성 때문에 대선 전에 대법관을 임명하는 게 시급한지’를 묻자 “(그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이건 결국 연방대법원에 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연방대법관이 9명인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당초 공화당 내에서 ‘올해 안’ 대법관 후임 인선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 요구로 시기가 당겨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할 의사를 잇달아 드러내자 최근 ‘평화로운 권력 이양’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공화당도 대선 결과 불복에 따른 혼란을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한 달여 뒤 치러질 대선에서 촉발할지도 모를 소송과 새 대법관 인선을 연관 지어 걱정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 그렇다.

사실 ‘진보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온 긴즈버그 타계 후 대법원의 ‘색깔’이 어떻게 변할지가 정상적인 관심일 것이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주요 재판의 최종 판단은 물론 우리의 헌법재판소 역할까지 한다. 6년의 임기와 정년까지 둔 우리와 달리 종신직이다. 긴즈버그는 27년간 대법관에 봉직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전날 ‘긴즈버그 대법관의 결정적 선택’ 보고서에서 “긴즈버그의 전임인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은 ‘새 대법관이 올 때마다 대법원은 달라진다’고 했다”며 “긴즈버그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면 그가 없는 대법원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다”며 주요 판결에서 그의 판단을 분석해 소개했다. CRS는 “긴즈버그는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서 다수의견을 작성하거나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 취임 후 의견이 동수로 갈린 112건에서 결정적 선택을 했다. 2018년 물러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이런 결정이 186번이나 된다. 케네디 대법관은 보수 쪽이지만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등 사안에 따라 진보 쪽에 섰다. 긴즈버그의 부재가 대법원에 큰 변화를 부르지 않을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도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청년추방유예제도(다카)’ 폐지는 위법이라는 결정에 일조한 일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로버츠의 인선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오바마케어’ 관련 소송에서 진보 쪽 손을 들었다.

배럿 지명자는 다음달 청문회에서 미국을 관통하는 사안들에 대한 생각을 추궁받게 된다. 하지만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11월 대선과 관련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이런 관심도 비정상적이겠지만.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