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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설왕설래] 오징어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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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구(寇)는 떼도적이다. 왜구(倭寇)가 그런 존재다. 고려 말∼조선 중기 수백·수천 명씩 떼를 지어 약탈을 자행했다. 살인과 납치도 서슴지 않았다. 왜 그들을 막지 못했을까. 명종실록, “인마(人馬)를 모집하느라 여러 날을 보내는데, 왜구를 잡기도 전에 백성은 피폐해지고 만다.” 그즈음 바다에 배만 보여도 민초들은 공포에 떨며 산으로 도망쳐야 했다.

우리나라만 그랬을까. 중국도 똑같았다. 왜구의 노략질에 산동·절강·복건 해안은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명나라의 해금령 이후에는 가왜(假倭)까지 나타났다. 가왜는 바다 장삿길이 막히자 왜구를 가장해 약탈에 나선 명의 상인집단이다. 중국에서 왜구를 소탕한 것은 척계광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은 그의 병법을 본받았다.

왜구의 본질은 무엇일까. 약탈이다. 이익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약탈. 그들에게 생명을 중시하는 자비의 정신은 없다.

남미에 ‘중국어선 공포’가 번지고 있다. 페루 연안에 불법조업 중국 선단이 나타났다. 선단 하나의 규모는 수백 척. 선단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 테니, 페루 연안에는 수많은 중국어선이 까맣게 떠 있을 듯하다. 그들은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를 넘나들며 오징어잡이를 한다.

페루∼칠레∼아르헨티나의 태평양 연안에 이어지는 수천㎞의 오징어 어장. ‘오징어 루트’라고 한다. 중국어선들은 이 루트를 따라 남하하면서 오징어를 싹쓸이한다. 이제 오징어 루트에서 ‘오징어’를 떼야 하지 않을까. 그곳에도 조만간 오징어의 씨가 마를 테니. 우리나라 동해는 오징어 루트의 운명을 알리는 이정표다. 중국어선이 떼를 지어 출몰한 결과, 동해 오징어는 씨가 마르고 있다.

남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실탄 사격을 한다. 아르헨티나는 중국어선을 향해 기관포를 발사했다. 그래도 어장 황폐화는 막기 힘들다. 왜? 주변 어장에 오징어가 사라지는 판에 EEZ 안쪽이라고 성하겠는가.

중국 불법조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역시 약탈이다. 중국 원양어선은 약 1만7000척. 세계의 바다는 중국어선의 약탈장으로 변했다. 이제 그들을 ‘중구’(中寇)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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