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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리셋 코리아] 독일 통일처럼 급작스러운 한반도 통일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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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 모순은 회복되기 힘들어

북한 급변에 대한 치밀한 대비 절실

중앙일보

이경수 전 주독일 대사·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다음 달 3일 독일 통일 30주년을 앞두고 한국민이 한반도 통일에 관해 관심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평화 지상주의로 통일을 막연한 미래의 일로 미뤄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 방문 연설에서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이며,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세 가지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첫째, 서독이 평화 공존과 긴장 완화 정책인 동방정책으로 점진적 통일을 추구했으나 독일 통일은 급작스럽게 왔다. 둘째, 서독도 통일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통일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다. 셋째, 독일 통일은 형식적으로는 동·서독 간 합의 통일이나 본질에서는 공산주의 체제 모순에 직면한 동독을 서독이 흡수한 통일로 보아야 한다.

서독은 축적된 경제력과 외교력으로 동·서독 협상, 전승 4개국 승인 획득, 주변국과의 관계 및 유럽 통합 문제 등 난제들을 타결하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 329일 만에 혼란을 평화 통일로 귀결지을 수 있었다. 통일을 앞서 경험한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통일은 예측할 수 없으나 반드시 올 것이며, 미리 준비한 만큼 통일 과정에서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반도 통일도 북한 급변으로부터 올 가능성이 크다. 유례없는 3대 세습 독재, 개혁·개방 거부와 구조적 경제난, 핵 개발과 자원 배분 왜곡, 잔혹한 인권 상황과 계속되는 주민 이탈 등이 초래하는 체제 내부의 심각한 모순은 북한 체제를 회복 불능의 실패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올해 4월 이후 제기된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이 해프닝으로 봉인됐지만, 그의 건강 상태로 보아 언제라도 이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북한 급변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북한 급변을 현실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급변으로 통일 기회가 온다면 이를 더는 놓칠 수 없다는 각오도 해야 한다.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총리는 통일 기회가 왔는데도 이를 놓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했다.

북한 급변은 독일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훨씬 큰 충격과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분단 장기화에 따른 남북 이질화, 동족상잔의 전쟁 경험, 소련 퇴장과 대비되는 중국 부상과 미·중의 지정학적 경쟁, 실재화한 북핵 문제가 촉발한 한반도 문제의 다자화,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 대량 난민 유입과 인도주의 위기, 국민의 공감대 형성 문제 등은 우리의 정밀한 전략적 사고와 사활을 건 대응을 요구한다. 정부는 경제·사회·군사·외교·국민통합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종합적이고 치밀하게 대비하고 있는가.

북한은 올해 6월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파괴하고 대남 관계의 대적 관계 전환과 전면적인 대화 거부를 선언했다.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국군은 자신의 군대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겉으로의 평화를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명시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수사로 채워진 평화 지상주의가 남긴 자리를 무엇이 비집고 들어올지는 명확하다.

이뤄질 수 있다면 ‘평화’와 ‘북한의 선의’에 대한 기대도 좋다. 그러나 국가 정책과 전략은 냉정하게 현실에 근거해야 하며 다양한 옵션을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붕괴론 또는 정치 음모론으로 사라져 버린 북한 급변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가 존립과 민족 장래를 위해 제기하는 다양한 통일 논의가 실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경수 전 주독일 대사·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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