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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데뷔 25년 크라잉넛 “25년 달려온 비결요?…만나면 재밌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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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홍대 드럭서 첫발

멤버 교체 없이 ‘폭풍 질주’

최근 베스트앨범 펴내

‘말달리자’ 등 대표곡 16곡 담아

다음달 17일 거리두기 콘서트


한겨레

데뷔 25주년을 맞은 펑크 밴드 크라잉넛. 왼쪽부터 한경록(베이스), 이상면(기타), 박윤식(메인보컬·기타), 이상혁(드럼), 김인수(아코디언·키보드). 드럭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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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육상 선수의 말이 아니다. 노랫말이다. 노래방에서, 공연장에서, 때론 방구석에서 수많은 이들을 방방 뛰게 만든 노래, 바로 ‘말달리자’다.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고 했던가. 그렇게 목 놓아 “말달리자”고 외쳐온 펑크 밴드 크라잉넛이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1995년 서울 홍대 클럽 드럭에서 시작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다. 가곡 ‘선구자’ 속 “말달리던 선구자”처럼, 인디의 맏형으로 말이다.

“공연하고 멤버들끼리 술 마시는 게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지난 23일 홍대 드럭레코드에서 만난 크라잉넛이 말했다. 술을 자주 마셨냐고 물어보니 “밥처럼 먹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마시자 마시자 술을 쫙쫙 마시자”로 시작하는 ‘마시자’, “부어라 마셔라 춤을 춰라/ 우리의 인생이 여기까지인 듯”이란 노랫말을 담고 있는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 등 술내 나는 곡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5돌을 맞는 뜻깊은 때지만, 기뻐하긴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라지니 새삼 보이는 것도 생겼다. “관객이 공연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 준다는 것, 관객이 없으면 가수도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죠.”(이상혁·드럼)

이들은 데뷔 10주년, 20주년을 제대로 기념하지 못했다. “10주년 땐 동반입대 한 멤버들이 제대할 때여서 무언가를 도모하기 어려웠고, 20주년에는 메르스 사태가 터졌어요.”(김인수·아코디언 및 키보드) 25돌을 맞아 이들이 최근 베스트앨범을 낸 이유다.

앨범에는 모두 16곡을 담았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시작으로 ‘말달리자’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등이다. 앨범 재킷은 이상면(기타)이 1~8집 앨범 재킷을 패러디해 그린 유화를 모아 제작했다. “지난해 왼쪽 팔이 부러져서 악기 연주를 못 했어요. 재활하며 미술학원을 좀 다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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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25주년 기념 베스트앨범 재킷. 1~8집 재킷을 이상면(기타)이 패러디해 그린 작품이다. 드럭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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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뿐만 아니라, 기념공연과 전시도 마련했다. 다음달 17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철저한 방역을 기반으로 한 거리두기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같은 곳에서 이들의 사진과 영상 자료 등을 선보이는 전시도 열린다. 11월에는 베스트앨범을 엘피(LP)로도 낼 참이다.

지난 세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1999년 2집 냈을 때가 가장 기억나요. 앨범 발표하고 2주도 안 됐을 때 세종대에서 공연을 할 때였어요. 첫 곡으로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부르는데, 관객들이 ‘떼창’을 하더라고요. 이제 막 발표해서 저희도 연주를 몇번 안 해본 곡이었는데, 그때의 감동이란….”(한경록·베이스)

박윤식(메인보컬 및 기타)은 1996년 홍대와 명동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쇼’에 참여했을 때를 꼽았다. “맨날 홍대 드럭 지하 클럽에서만 공연하다가 처음으로 야외공연을 했을 때예요. 앰프를 보고는 멤버들과 ‘이거 발 올리는 덴가?’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사람들도 우리 공연을 보고 ‘얘네 뭐 하는 거지?’ 할 정도로 펑크가 생소할 때였는데, 어느 순간 그런 관객이 우리와 하나 돼 뛰어놀고 계시더라고요. 그 감동이 생각나요.”

하지만 일부 기성세대는 달랐다. 이들을 배제와 가르침의 대상으로 타자화했다. “유명한 영화감독이 영화 출연 제의를 해서 갔더니, 비행청소년 역이더라고요. 우리 외모만 보고 ‘얘네들은 이런 애들이야’ 이렇게 생각한 거죠. 대판 싸우고 나왔는데, 우리가 펑크를 하는 이유도 그런 재수 없는 사람들의 영향이 커요.”(이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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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을 맞은 펑크 밴드 크라잉넛.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상혁(드럼), 한경록(베이스), 김인수(아코디언·키보드), 이상면(기타), 박윤식(메인보컬·기타). 드럭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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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말달리자’가 탄생한 배경도 비슷하다. “1995년, 드럭에서 공연하며 평론가들과 술을 많이 마셨는데, 술만 먹으면 그분들이 저희를 가르치려 들더라고요. ‘펑크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든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른데…. 그래서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 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에 싸워야 해/ 말달리자’라는 가사를 통해 그런 사회적 불만을 표출했던 것 같아요.”(이상혁)

크라잉넛은 데뷔 이후 멤버 교체가 없었다. 비결이 뭘까. “무엇보다 만나면 재미있다는 거예요. 공연이 즐거운 건 기본이고, 공연 끝나고 저희끼리 하는 뒤풀이가 지금도 너무 기대돼요.”(이상혁) 이상면, 이상혁이 쌍둥이 형제인데다, 맏형 김인수를 뺀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초, 중, 고 동창으로 군대까지 함께 다녀왔다는 점도 이들을 잇는 끈끈한 연결고리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멤버들이 품고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아이유의 미니 5집 <러브포엠> 포토북이었다. 최근 아이유가 사인과 메시지를 담아 멤버들 앞으로 일일이 보낸 것이다. “바쁠 텐데 뭘 이렇게 손수 보내냐”면서도 그들은 책을 가슴에 안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조선펑크’ 개척자의 팬심은 현재 아이유로 향하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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