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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톺아보기]경제민주화와 양립 않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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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근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아시아경제

송원근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사는 지난해 1월 현대자동차에 주당 2만1967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배당 총액이 5조8000억원으로 전년도 순이익의 3.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제안은 일반 주주뿐만 아니라 의결권 자문사 ISS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기업이 보유한 유동성의 대부분을 배당하면 연구개발(R&D)과 투자가 어려워져 기업가치가 훼손된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엘리엇은 사외이사 후보로 수소연료전지 기업인 발라드파워시스템즈의 매큐언 회장을 추천했다. 캐나다 기업인 발라드파워시스템즈의 최대주주는 수소 관련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국 기업 웨이차이파워다. 엘리엇은 수소차와 수소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분야에서 현대차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핵심 인사를 현대차의 이사로 추천한 것이다.


법무부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이 되는 1인 이상의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임하고 이때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산해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 이 규정이 적용되면 엘리엇이 추천한 경쟁사의 핵심 인사가 이사로 선임되는 일이 가능해진다. 30% 수준의 최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되는 반면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는 여러 개의 펀드를 이용해 각각 3% 이하의 지분을 취득하게 되고 여기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지지까지 등에 업으면 자신이 추천한 이사의 선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대 기업 핵심 인사의 이사회 입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경쟁 기업 인사가 이사가 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기업의 경영자들이 다른 기업의 이사회 멤버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상장 기업의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를 처음 입법화한 사베인-옥슬리법 제정 이후 이사회의 경영진 통제 강화로 이런 관행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외이사의 공익성이 강조돼 다른 기업의 경영진이 이사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수소경제는 미래의 핵심 산업 생태계로 주요국들이 이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경쟁 국가인 중국 기업이 최대주주인 회사의 경영진이 현대차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수소경제 관련 첨단 기술 및 국가 전략이 고스란히 경쟁사 및 국가로 넘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주주 의결권 3% 제한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감사위원회는 외환위기 이후 경영자 감시·감독 메커니즘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존 감사 선임 시의 대주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그대로 존속시켰고 이런 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대한 집착이 감사위원 분리 선임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이사 선임 시 주주 의결권 제한은 국제적으로 입법례를 찾을 수 없는 갈라파고스 규정이다. 미국의 사베인-옥슬리법에서도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있을 뿐 이사 선임 시 주주 의결권 제한이나 분리 선임은 없다. 이사회가 이원적 구조인 독일의 경우에도 감사위원 선임 시 주주 의결권은 제한되지 않고 분리 선임을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가 목적이라면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요건을 강화하거나 미국처럼 감사위원회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이사의 선임은 주식 보유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성립하는 주식회사의 의사결정이므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식회사의 민주적 의사결정 원칙에 반한다. 따라서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 선임안은 경제민주화와 양립하지 않는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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