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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자동차가 점령해버린 자전거도로···노골적인 ‘차종(車種)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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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자전거를 타고 대전 유성구 월드컵대로의 자전거전용도로를 달리던 한 시민이 불법주차 차량에 막히자 차도로 진입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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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생활자전거’입니다. 비싸고 화려한 부품이나 장식품은 없지만 우리 주인님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주 유용한 바구니와 짐받이가 앞뒤에 달려 있지요. 보기에는 촌스럽지만, 교통수단으로서는 최고랍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아줌마 자전거’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고요. 그냥 생활자전거라고 불러주세요.

제가 주인님을 태우고 대전지역의 자전거도로를 돌아봤습니다. 한때 대전은 ‘자전거도시’라는 이름이 붙었었죠. 그런데….

■자동차가 점령해버린 자전거전용도로

“끼익∼.”

토요일인 지난 26일 오전 주인님과 함께 유성구 도안지구 아파트단지를 나와 상대로의 차도에 나있는 자전거전용도로로 들어서고 나서 겨우 1분이 지났을까요. 주인님이 급브레이크를 잡았어요. 앞을 보니, 자전거도로는 승용차·승합차·트럭 등 온갖 자동차로 꽉 막혀 있더군요. 주인님이 하는 수 없이 핸들을 꺾어 차도로 들어서려는 순간, 뒤에서 승용차가 한 대 달려오고 있었어요.

‘이렇게 죽는구나.’

순간 죽음이 떠오르더군요. 잘못했으면, 승용차가 저를 들이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차는 아슬아슬하게 저를 스쳐지나가더군요.

“아이고, 자전거도로가 아니라 자동차 주차장이군.”

주인님이 연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자전거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있는 상대로를 벗어나 월드컵대로로 들어섰습니다. 왕복 8차선의 드넓은 도로여서 ‘여기는 괜찮겠지’ 했지만, 여기도 다를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유성생명과학고 앞 인삼네거리에서 유성고 후문까지 나 있는 자전거도로 역시 온갖 차량으로 완전히 점령을 당했 있었어요.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었지만,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절반에 불과했고요. 수많은 차량 운전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전거도로를 주차장으로 쓰고 있더라고요.

“자전거도로가 이렇게 주차장으로 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도를 이용해 자전거를 끌고 가던 한 여성에게 주인님이 물었어요.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화가 나요. 자전거도로는 다 막히고, 인도는 길이 고르지 않고, 결국 차도로 달리라는 얘긴데 시속 60~70㎞로 달리는 차량들 속에서 어떻게 달려요. 그래서 이렇게 끌고 가는 거예요. 왜 이런 불법주차를 단속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동차가 자전거도로를 주차장으로 사용했는지, 자전거도로와 차도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플라스틱 구조물 중 상당수가 깨져 있더군요. 자동차가 밟고 지나다녔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구조물은 모두 사라지고 쇠로 된 볼트만 돌출돼 있는 곳도 많았어요. 아주 위험해 보이더군요.

그 옆을 자전거로 지나가던 중학생 2명과 초등학생 1명이 역시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더군요. 주인님이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었지요.

“화가 나요. 자전거도로 불법 주정차를 강력하게 단속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 역시 불만이 가득 찬 표정이더군요. 상대로의 자전거도로에서는 노점상이 물건을 팔기 위해 세워놓은 트럭도 있었어요. 한마디로 무법천지였어요.

이런 사정은 다른 곳도 똑같았어요. 원신흥도서관 인근 원신흥남로의 자전거전용도로 역시 자동차가 점령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플라스틱 구조물이 깨진 것도 월드컵대로와 비슷했고요. 자전거도로와 차도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봉은 자전거도로 쪽으로 넘어진 채 방치돼 있는 곳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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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원신흥동 원신흥도서관 앞 자전거전용도로에 차도와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세워진 봉이 넘어진 채 방치돼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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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원신흥동에 있는 자전거전용도로, 자전거전용도로와 차도 사이의 경계에 설치한 구조물이 깨진 채 방치되고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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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국의 단속은 실시되지 않고 있었어요. 당국이 방치하는 동안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를 주차장 대용으로 쓰고 있는 거였어요.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봅니다. 자전거를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거든요. 자전거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입니다. 일종의 차종(車種)차별인 셈이죠.”

주인님이 취재한 이재영 한국자전거정책연합 상임이사는 이렇게 지적하더군요. 이 상임이사의 말에 따르면 영국 등 유럽에서는 자전거도로에 불법주정차를 하면 현장에서 600유로(약 8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도 한답니다.

■움푹 패이고, 불쑥 솟아오르고… 위험천만

인도(보도) 위에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역시 위험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지난 23~25일 서구 쪽 자전거도로를 돌았는데요.

대전 서구 둔산로 SK드로드밴드~은하수 네거리 사이의 인도에 나 있는 자전거도로는 관리가 거의 되지 않으면서 곳곳이 움푹움푹 패여 있었어요. 근처에는 자전거도로에서 떨어진 아스팔트 조각이 나뒹굴어 자전거가 달리다 넘어지기 딱 좋은 상황이더군요.

가장 심각한 것은 인도의 자전거도로와 차도의 횡단보도 사이의 연결 부위였어요. SK드로드밴드~은하수 네거리 사이 농협 앞 차도와 횡단보도 연결 부분은 깊게 패여있어서 저 같은 자전거가 언제라도 전복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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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둔산동 SK드로드밴드~은하수 네거리 사이 자전거도로가 움푹 패여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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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지미네거리의 인도 위 자전거도로와 횡단보도를 연결하는 부위 역시 음푹 패여 사고 위험이 컸어요. 누리네거리의 자전거도로와 횡단보도 사이에도 깊이가 5㎝에 이르는 배수구 덮개가 방치돼 있더군요. 누리아파트 앞 한밭대로의 인도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포장재가 약 5㎝ 높이로 돌출돼 있었지만, 역시 방치되고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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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한밭대로에 설치돼 있는 자전거도로의 포장재가 5cm 정도 솟아있다. 자전거를 탄 한 시민이 이곳을 피해 화단 쪽으로 달리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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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천 둔치에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정말로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는데요, 여기도 위험요소가 널려 있더군요. 갑천 만년교 아래 자전거도로의 경우 폭 15㎝ 정도로 움푹 들어간 곳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어요. 다리 아래이기 때문에 낮에도 어두운 곳인데, 아주 위험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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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갑천 만년교 아래에 설치돼 있는 자전거전용도로에 폭 15cm의 홈이 길게 패여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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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로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해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아요.”

자전거를 타고 근처를 지나던 한 시민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더군요.

주인님이 취재한 대한민국자전거출퇴근운동본부 이강철 본부장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만 놓고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면서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면 정기 점검을 실시하고, 특히 불법주정차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더군요.

주인님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대전에는 294개 노선에 766㎞의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고 해요. 이 중에서 59개 노선 119㎞는 자전거전용도로라고 하고요. 자전거도로가 아무리 많으면 뭐하겠어요. 우리 자전거가 편안하게 지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야지요.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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