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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숨&결] 플랫폼 경제의 그늘 /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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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경제의 이중구조는 중화학 공업화 이후 대기업 부문에 의존적인 형태로 발전되어 온 탓도 크지만, 미국이 주도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경제의 금융화 추세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의 법학자인 에릭 포즈너와 경제학자인 글렌 웨일이 최근 출간한 <래디컬 마켓>(Radical Markets)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 산업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주식을 공통으로 소유하는 기관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은 가격 경쟁을 통해 제품을 혁신하는 대신―그러면 어느 한 기업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통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설비와 기술 투자를 줄이고 노동자를 구조조정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업들이 투자와 혁신 대신 긴축과 비용절감을 강조하게 된 시기와 기관 투자자들이 부상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관 투자자, 투자은행, 기업의 고위 관리직이 배타적으로 그들만의 금융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개발 중인 중소기업, 청정에너지와 환경보호 관련 사업, 사회기반사업 등은 구조적인 저투자를 경험한다. 1990년대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제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방 효과’로 인해 한국의 금융체제 역시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은 이러한 이중구조를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또 더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규제되지 못한 채 국경을 넘어 사업을 하는 거대 플랫폼 금융자본과 영세 플랫폼 하청사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영세업체의 노동자는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수료 인하와 노동강도 강화의 최대 피해자가 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플랫폼 노동은 이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똥콜”과 “꿀콜”로 분리되는 호출형 플랫폼 노동을 넘어 가사서비스를 받거나 영상이나 웹툰을 볼 때도 플랫폼 노동이 사용된다. 소비자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이나 누군가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경제활동으로서의 이점이 강조되는 사이, 이 노동이 출혈적 경쟁과 알고리즘에 의한 비인간적 통제, 그리고 대기시간을 포함한 무한 노동시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 독립사업자로 간주되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을 연구 중인 나의 대학원 학생은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유지할 수 있던 최소한도의 자율성을 무력화시키고 종속성을 강화하여 오히려 위험과 노동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플랫폼 배달노동자의 높은 소득이 간혹 보도되기도 하지만 모든 비용을 제거한 실제 순소득은 그에 현저히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조사 중 여러 플랫폼 배달 앱 노동자를 만나 본 그 대학원생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돈을 좀 많이 버시는 분이긴 한데, 아침마다 아이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한대요. 아버지가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잘 대비하고 있으라고.” 적어도 매일 죽을 가능성을 염려해야 하는 일자리라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거대 자본의 투자로 성장하면서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를 유발하고 있는 글로벌 공유 플랫폼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플랫폼 협동조합’이 등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사례가 축적되어 가고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의 개념을 마련한 숄츠의 원칙 가운데 작업장에서의 공동결정, 경영진의 자의적 결정으로부터의 보호, 과도한 작업장 감시체제의 제거, 로그오프 할 권리, 적절한 임금과 소득 보장, 보호법제의 확립 등은 현재의 플랫폼 기업에서도 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방안들이라 여겨진다.

플랫폼 경제의 빛이 아니라 그 그늘에 주목하기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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