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활동가(shinje@kfem.or.kr)]
이슈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반년 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올봄은 유독 더웠다. 6월에 이미 낮 최고기온 30도를 훌쩍 넘어섰다. 기상청은 지난 5월 여름철 전망을 발표하면서 폭염일수가 20~25일로 평년에 비해 많고,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겠다고 예보하기도 했다. 덜컥 겁이 났다. 2018년 폭염 당시 낙동강에서 녹조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부산 일대 단수 위기까지 갔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올여름 녹조 대응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사무처는 여름철 혹서기 재택근무를 논의했는데, 막상 7월을 지나면서 상황은 예상과 전혀 달리 전개되었다.
▲ 낙동강 강류 칠곡보. ⓒ함께사는길(이성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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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변화다"
7월 23일 부산에 일 강수량 176mm의 비가 쏟아졌다. 부산지역 바닷가의 비싼 아파트 주차장이 물에 잠기는 충격적인 사진이 보도되면서 걱정이 앞섰다. 뒤이어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대전과 여주가 홍수 피해를 입고, 철원까지 올라갔다. 장맛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다시 장마전선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섬진강 제방을 무너뜨리고, 광주에 홍수 피해를 안기고, 합천창녕보 제방도 무너뜨렸다.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수많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중부지방 장마 기간은 54일로 역대 1위, 강수량은 920mm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산사태는 1482건이나 발생했으며, 사상자도 42명이나 된다.
겪어보지 못한 홍수 앞에 사람들은 "이 비의 이름이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다"라며 기후변화를 실감했다. 확실히 장마는 길고 강력했다. 보통 수해피해는 태풍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열대성 저기압이 육지에 상륙해 소멸하는 과정에서 짧은 기간 동안 태풍 경로에 겹친 지역들에 집중적인 피해를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장마는 긴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위아래로 두 번이나 훑으며, 국토 곳곳의 취약한 지점을 모두 꺼내어 우리 앞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장마의 피해는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이번 장마가 길고 강우량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관리 계획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은 대응을 잘못한 것이거나 기존에 구축된 시설의 치수 능력이 과다 산정됐다는 의미다. 최근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된 낙동강 '모래 제방'이나, 제방 높이를 법적 기준 이하로 임의로 낮춘 섬진강 교량 등과 같은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엉뚱하게 불똥 튄 4대강 논란
온 국민이 긴 장마로 걱정이 높아진 때에 엉뚱하게 4대강사업 논란에 불이 붙었다. 지난 8월 8일 무소속 홍준표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정비에 이은 지류, 지천 정비를 하지 못하게 그렇게도 막더니 이번 폭우 사태 피해가 4대강 유역이 아닌 지류·지천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 하는가"라고 주장하며 때아닌 4대강사업 찬양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홍 의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8월 9일 새벽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진 합천창년보의 상류 제방이 무너지며 일대가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거들고 나서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4대강사업의 홍수 조절 효과를 평가하라며 나서자 4대강사업 논란은 후끈 달아올랐다.
사실상 팩트를 따지고 들면 참 허탈한 논란이다. 통합당은 섬진강이 4대강사업에서 빠져서 홍수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보가 건설되지 않아서 홍수가 났다는 취지라면 이는 보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주장이다. 보는 홍수조절 능력이 전혀 없는 시설이며, 이는 두 차례의 감사 결과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7월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설계, 시공 일괄입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보 위치와 준설은 추후 운하 추진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8년 7월에 진행된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실태 점검 및 성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4대강사업으로 예방한 홍수 피해의 가치는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각기 다른 정권에서 두 차례 진행한 감사 결과는 모두 4대강 보 건설로 홍수를 조절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보여주고 있다.
▲ 집중호우로 합천창녕보 상류 제방이 유실됐다. ⓒ창녕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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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구례읍. ⓒ구례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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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오히려 홍수 피해를 유발하는 시설
보는 하천의 물을 가로막는 구조물이다. 필연적으로 하천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보는 강물의 흐름을 막고, 많은 비가 내렸을 때 수위 상승을 유발한다. 통합당 의원들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홍수 유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보 관리 규정(국토부 훈령 1204호) 제5조 보의 용도에도 가동 보는 홍수 유출량을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홍수 조절 기능이 없다는 의미다. 평상시 물을 비워놨다가 홍수 시 수문을 닫아서 하류의 홍수 피해를 저감하는 다목적댐과는 달리 보는 홍수 시 수문을 열어야하는 시설인 것이다.
환경부 4대강조사평가단 기획위원회는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면서 "보 해체는 4대강사업 시 수행된 퇴적토 준설 및 제방 보강 상태에서 보를 해체하는 것이므로 보 해체 이후 홍수량의 흐름이 더 원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계획홍수위는 현재 수준보다 낮아지고 홍수예방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계산한 바 있다. 국토부는 홍수소통을 위해서 하천변에 나무조차 베어내면서 하천 홍수 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거대한 구조물을 강에 16개나 만들어낸 것이다.
홍수가 지나간 금강 공주보에는 보 구조물 앞뒤로 모래가 수북이 쌓였다. 강물에 운반되던 모래가 쌓인다는 것은 유속이 느려진다는 의미인데, 보 구조물이 강물의 소통을 가로막았다는 뜻이다. 쌓여있는 모래를 보고 있자니 강물이 가로막히는 힘도 느껴지는 듯하다.
홍수 대응 패러다임을 바꿔야
2020년 장마는 여기저기 많은 상처를 남겼다. 국민들은 수해로 고통받고, 정치권은 4대강사업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부처는 홍수 책임을 떠넘기느라 혈안이다. 그러는 사이 홍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다시 코로나로 옮겨가고 우리는 정작 했어야 할 논쟁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댐과 제방으로만 답을 찾아서는 안 된다. 우선 강을 위한 공간(Room for the river)을 돌려주어야 한다. '강을 위한 공간'은 강이 평소 수위를 넘었을 때 완전히 범람하지 않고 물이 머물도록 하는 공간의 개념이며, 이는 2006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 당시 이미 추진된 계획이다. 홍수에 의한 피해는 강의 공간까지 침범하는 과도한 강변 개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방 안에 과도하게 물을 가두기보다 적정한 공간에 안전하게 홍수가 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산사태가 우려되는 경사지 및 해안 매립 등의 과도한 개발도 중단돼야 한다. 강우량이 많아지면 물을 머금은 산사면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산지 경사도 규제 완화를 중단하고 안전기준을 상향해야 한다. 이번 부산 침수의 경우 진구와 남구 일대는 해안가 매립을 통해 조성된 공간이다. 홍수 발생 시 갯벌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야 할 하천의 길목을 막음으로써 물이 범람했고 피해가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라앉고 있는 섬 '투발루'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것이다. 계곡부 등 산사태 우려 지역 및 해안 저지대의 주거지를 줄여가는 도시 계획 마련도 필요하다.
도시 계획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도시 침수의 경우 특히 댐이나 제방으로 할 수 있는 추가적인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빗물받이, 하수관로 등을 적절하게 정비해야 함은 물론이고, 투수층의 확보 등도 핵심과제다. 홍수 피해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에 대한 전환도 필요하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홍수 위험지도를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홍수나 산사태 위험지역 내 주거지를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 더 이상 기존의 물 관리 방식으로는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 근본적인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활동가(shinje@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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