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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펜션에 간 공기업 취준생, 그가 방화미수범이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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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극단선택 시도 후 불껐다고 해도 인명·재산 피해 위험 높았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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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실현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죽을 생각만 했지 건물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지난 5월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법정에 선 20대 A씨에게 법원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우울증을 앓아 우발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을 뿐 펜션 건물에 불을 지르려는 고의는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취준생인 그는 왜 한순간에 방화미수범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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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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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4일 오전 2시 30분쯤 강원 강릉시 한 펜션 객실에서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바닥에 번개탄 4개를 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은 금세 번개탄을 넘어 바닥 장판으로 옮겨 붙었다. 겁이 난 A씨는 곧장 물을 부어 장판 등에 붙은 불을 껐지만, 그는 방화미수범이 됐다.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법정에 선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을 뿐”이라며 펜션 건물에 불을 지르려는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불을 붙일 당시 객실에 있는 이불과 장판 등에 불이 옮아붙어 펜션 건물을 불태울 수도 있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불을 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자칫 큰 인명 피해나 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으므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A씨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1심 선고 이후 A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곧바로 항소했다. 특히 그는 항소심 최후 진술에 나서 “불을 끄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며 방화의 고의성이 없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실현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변호인도 “피고인이 현재 성실하게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박재우)는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울성 장애와 불안 장애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르렀고, 스스로 불을 끄고 피해 보상도 이루어졌으나 형을 달리할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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