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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금속으로 빚은 소나무, 영원을 향하다…‘소나무 작가’ 이길래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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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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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길래의 작품 ‘Millennium Pine Tree-17’의 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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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길래(59)는 ‘소나무 작가’로 불린다. 여느 조각가들처럼 다양한 주제와 재료의 작업을 하지만 유독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 작품이 주목을 받으면서다. 국내를 넘어 해외 전시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미국, 두바이, 싱가포르, 모나코 등 해외 여러 그룹전에 자주 초대되는 이유다.

2018년 국내외 미술관·갤러리 등 7개의 그룹전에 초청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엔 3개 해외 그룹전에만 참여했다. 물론 그 소나무 시리즈 조각이 주요 출품 대상이다. 미술가에게 자신을 대변하는 대표작품이 있다는 것은 큰 자긍심이자 보람이다. 하지만 때론 자신의 작품세계가 특정한 틀, 제한적으로 인식된다는 안타까움도 존재한다.

이길래 조각가가 5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길래-Timeless Pine Tree: 千年’(영원한 소나무: 천년)이란 이름으로 오페라갤러리 서울(서울 강남구 언주로)에서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조각과 드로잉 연작 등 40여점을 선보이는데, 모두 신작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마디로 작업실에서 열심히 작업만 했다”고 말했다. 작가로서의 뿌듯한 자신감이 녹아 있다. 전시장에서는 신작 소나무 시리즈인 ‘밀레니엄 파인 트리’가 두드러진다. 죽지 않는 ‘천년’의 소나무, 나아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특히 일부 작품은 추상화되면서 추상조각으로 눈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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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길래가 ‘이길래-Timeless Pine Tree: 千年’(영원한 소나무: 천년)이란 개인전을 오페라갤러리 서울에서 열고 있다. 사진은 작품 ‘Millennium Pine Tree 2019-10’(135×280×63㎝, 동파이프·동선 산소용접). 오페라갤러리 서울 제공


작품들은 특유의 조형미를 잘 드러낸다. 작가는 온몸을 움직여 흐르는 땀의 소중한 가치, 세밀한 손길로 가능한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 기다란 동파이프를 단면으로 얇게 하나씩 잘라 조각을 낸 뒤 한 생명체의 세포라도 만들 듯 정성들여 손질한다. 그리고 수백개의 조각들을 산소용접으로 붙여 나간다. 산수화 속에서 본 듯한 구불구불한 몸체, 옹이와 나이테를 만들고 뻗어나온 몇 개의 가지 끝에는 솔잎을 용접한다. 큰 몸체는 물론 작은 솔잎 하나까지 손길을 더한다. 일부는 부식시켜 청동빛 녹까지 낼 정도다.

오랜 시간의 작업이 마무리되면 마침내 수백년의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푸르른 생명력을 자랑하는 노송의 풍모가 드러난다. 한 그루로 우뚝 선 작품이든, 한 가지의 작품이든 마찬가지다. 전체적 형태미는 물론 색감, 특유의 질감 등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칠고 딱딱한 금속조각들이 작가의 개념과 손길로 영원한 생명력을 품은 소나무로 재탄생한 것이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소나무 그 자체로, 외국인들에겐 동양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조명 아래 놓이는 작품은 그 그림자까지도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된다. 미술비평가 로르 마르탱은 ‘이길래-자연을 빚는 자’란 전시평문에서 “시각적·개념적 은유를 통해 그는 작가적 사유를 연장했고, 나무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화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풀어 나간다”며 “기하학과 미니멀리즘 조형언어가 허용하는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여러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궁금증을 품게 하고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신작들 중 ‘밀레니엄 파인 트리 9’ 등 일부 작품은 추상조각이다. 소나무 형태는 사라지고 땅속 깊숙하게 뻗은 뿌리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표현하면서 한편으론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하는 명상적 작품이다. 이 작가는 “아주 즐겁고도 흥미롭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소나무 작업을 해온 지 어느덧 20여년, 작가에게 소나무는 그저 나무의 하나가 아니라 자연을, 생명을 상징한다. “자연이 영원한 스승”이라는 이 작가는 “수많은 동파이프 단면들이 물성화 과정을 통해 영원히 죽지 않는 소나무로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을 이 땅 위에 심어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이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 자연의 일부인 나 자신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전시는 16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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