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우 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6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당시 나라 안팎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아베 당시 총리는 한국과 중국을 의식해 참배는 자제하고 봄·가을 제사 때와 8·15 패전일에 공물만 봉납하는 방식으로 정면 대치를 피해갔다. 아베는 결국 퇴임 후 사흘 뒤인 지난달 19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집권기에 줄곧 집착한 우경화 정책 본능과 역사 수정주의 노선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스가 총리도 아베 내각 계승을 공언해왔으니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새 내각인 만큼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와 거리를 두는 차별성 있는 조치도 가능했을 터인데 '역시나'로 끝났다. 스가 내각에서도 야스쿠니신사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와 주변국 외교 정책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을 거듭 확인한 셈이어서 크게 실망스럽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처절한 피해를 본 주변국과 사람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의 사고로 회귀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는 행태다. 과거사를 진정으로 성찰하고 치유하는 모습 없이 역사적 퇴행을 반복하면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현실을 스가 정부가 정확히 인식해야 할 때다.
스가 총리의 공물 봉납은 교착된 한일 관계에도 부정적인 신호다. 그러잖아도 양국 간에는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갈등에 베를린 소녀상 문제까지 겹쳐 출구가 찾아지지 않는데도 아베 정부의 역사 인식 틀에 머무는 사실이 거듭 확인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가 정부는 징용배상 판결 문제를 한국이 먼저 해결하라며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미온적이어서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한다. 이런 우려스러운 분위기는 우리 정치권과 정부의 반응에서도 읽힌다. 스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을 여야는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동북아 이웃 국가에 큰 상처를 주는 행동", "한일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 등의 논평이 쏟아졌다. 정부도 유감 표명과 함께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 요구에 부응하라고 촉구했다. 스가 총리는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한국 측의 조치가 없다면 올해 연말 한국에서 열릴 차례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불참할 작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꼬일수록 대화가 긴요한데도 반대의 길을 고집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스가 내각은 새 정부답게 직전 정권 답습에서 벗어나 한일관계 돌파구 모색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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