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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김창완, 솔로앨범 ‘문’ 여는데 37년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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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속편 격

가족 향한 그리움 등 11곡에 담아

“젊은 시절 꿈꾼 영원한 사랑 그려

각박한 현실, 희망의 발판 됐으면”

중앙일보

김창완은 서울 반포동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종 계단에 걸터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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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저의 일상이 열차 시간표 같아요. 매일 일기 쓰듯 틈틈이 음악 작업을 하거든요. 라디오 방송을 하며 곡과 곡 사이, 잠을 청하는 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을 모아 쓰죠. 항상 불씨를 태우고 있으니까. 근데 그 달력 한장 넘기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거지. 막상 작업하는 덴 며칠 안 걸렸는데. 발심(發心)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봐요.”

37년 만에 솔로 정규 앨범 ‘문(門)’을 내놓은 가수 김창완(66)의 말이다. 1977년 산울림 데뷔 이후 김창완밴드 등으로 발표한 앨범이 50여 장, 배우로 출연한 드라마·영화만 70편이 넘게 다작을 했지만, 솔로 앨범은 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처음이다. 18일 발매를 앞두고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19로 예정된 공연이 다 취소돼 시간이 좀 낙낙해졌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앨범”이라고 밝혔다.

‘시간의 문을 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기타가 있는 수필’과 연결돼 있다.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던” 어머니(‘고등어와 어머니’)는 어느덧 “자리 누우신 지 삼 년”이 되어 “자리 떠난 지 칠 년”된 아버지와 함께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존재(‘이제야 보이네’)가 됐다. 그 역시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어 “사실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있기도 한단다”(‘시간’)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기타를 든 그는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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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발매된 김창완 솔로 앨범 ‘문’ 재킷. [사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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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총 11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은 김창완 주연의 모노드라마 OST같다. 기타 연주곡 ‘엄마, 사랑해요’로 시작해 ‘비가 오네’로 끝을 맺으면서 그 안에 타이틀곡 ‘노인의 벤치’ 같은 진중한 곡과 동요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 등을 골고루 실어 37년간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았다. 노래 속 내레이션은 운치를 더한다. 그는 “멜로디가 안 떠오를 때, 성급히 말하고 싶을 때, 만사 제치고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을 때” 내레이션을 쓰게 된다며 웃었다.

“‘기타가 있는 수필’ 앨범에 ‘꿈’이라는 내레이션 곡이 있어요. ‘예쁜 성이 있어서 거기에 왕자가 살고 또 다른 성에는 예쁜 공주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라고 시작하는 곡인데 그때는 내가 혹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이들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거든요. 그런데 이번 ‘노인의 벤치’엔 그 사람들이 현현(顯現)해요. 오래전 내 우상이었던 여인을 공원에서 만나요. 그 생각이 구체화 된 거죠. 아름다운 사랑이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생각을 버려라, 지금 당신이 하는 사랑이 전부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2004년 출판한 동요동화집 『개구쟁이』(문공사)와 지난해 펴낸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문학동네) 등에서 드러나듯 아이들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대상. 그는 “희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아기 얼굴”이라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각박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해요. ‘두 개에 이천원 옥수수 사세요/ 팔아야 식구들 여름을 나지’ 하면 슬픈 것 같지만 그 현실을 희망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잖아요.”

그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고여 있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동생 김창훈·창익과 함께한 산울림 시절도 그중 하나다. 2008년 창익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김창완밴드가 산울림 곡을 연주해 봤지만 두 팀의 경기가 사뭇 달랐다”고. “산울림이 타고난 운동선수라면 김창완밴드는 열심히 훈련한 선수랄까. 하나는 원색적이고 야성미가 있다면 하나는 좀 세련미가 있죠. 이제 대한민국 최고령 밴드 중 하나라. 미국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처럼 영화 ‘아마겟돈’(1998) OST 같은 제의가 오면 좋겠는데.”

지난 8월 종영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일본에서 4차 한류 열풍을 불러왔다. 극 중 정신병원장 오지왕 역을 맡은 그는 실제로도 ‘오지랖 대마왕’이다. 먼저 참견하진 않지만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산울림이 1981년 발표한 ‘청춘’(2015)을 김필과 같이 부르거나 1984년작 ‘너의 의미’(2014)를 아이유와 함께 하는 등 후배들과 협업이 잦은 것도 그 덕이다. “창작자는 늘 고독한 법인데 답답할 때 이런 선배가 있었지 하고 찾아주는 게 고마워요. 제가 발표한 곡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게 보람도 있고.”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찍는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판타지가 있으니 촬영장에 가면 꿈꾸러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제 일과 기쁨은 촬영 현장에서 다 끝났다고 생각해요. ‘요정 컴미’(2000~2002), ‘하얀거탑’(2007)이나 ‘밀회’(2014)도 모두 촬영 현장 장면으로 간직하고 있죠.” 이달 초 20주년을 맞은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오프닝 멘트를 직접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살아 숨 쉬는 순간보다 더 절실하게 그 순간을 느낄 순 없는 것 같아요. 미리 써 놓을 때도 있지만 결국 그날 아침 다시 써요. 당일이면 그것도 쉰밥이니까. 아침을 가불할 순 없더라고. 시간이란 게 참 묘한 것 같아.”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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