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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니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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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예비군은 전쟁이 터지면 직장 대신에 전장으로 달려가야 '예비 군인'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전차와 박격포, 기관총은 너무 낡았다. 40~50년 된 장비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제작된 대포도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을 장비가 왜 군의 무기고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트롯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되뇌고 싶은 심정이다. 현역 군인의 장비 상태도 중증이긴 마찬가지다.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와 F-16은 툭 하면 임무수행 불가이다. 기름이 부족해 뜨지 못하는 날이 많고 수리할 부품이 없어 격납고에 잠자는 일이 허다하다.

오늘의 안보 현실은 구한말 조선의 모습과 오십보백보다. 조선의 군은 아주 희한한 군대였다. 당시 조선이 보유한 병력은 120만명이었으나 실제 인원은 그것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 99%는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허수였다. 병적을 담당하는 하급관리는 매우 인기 있는 자리였다. 1인당 3천냥 정도를 받고서 장부를 조작했다. 그나마 있던 1%의 군대도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수도 한양의 성곽에는 변변한 대포 하나 없었고 총포는 녹이 잔뜩 쓸었다. 쓸만한 무기들은 병사들이 이미 팔아먹었고, 무기 창고에는 넝마와 녹슨 쇠붙이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당시 조선을 찾은 오스트리아 작가의 여행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적이 쳐들어와도 싸울 군대가 없었다.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때 군대 대신에 나선 사람은 호랑이를 잡던 산포수였다. 병인양요가 터지자 포수 370여명이 모였고, 신미양요에선 포수 3000여명이 미국 군대와 싸웠다. 하지만 무기와 전술에서 한 수 위인 서양 군대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신미양요 때 전사자는 미군이 3명인 반면 조선 군은 1백배 이상 많은 350명이었다. 역사는 외적의 총에 맞은 조선 백성들이 하얀 꽃잎처럼 성곽 아래로 떨어졌다고 기록한다.

요즘 우리는 나라를 빼앗은 놈만 욕하고 왜 나라를 빼앗겼는지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 안보는 돌보지 않고서 평화가 계속되기를 갈구한다. 이율배반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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