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은 브리핑에서 사망 사례 가운데 2건은 아나필락시스 쇼크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특정 식품과 약물 등의 원인 물질에 노출된 뒤 수분 또는 수 시간 이내에 전신적으로 일어나는 중증 알레르기 반응이다. 감염 등에 의해 유도된 항체가 말초신경을 파괴해 마비를 일으키는 신경계 질환인 길랑-바레 증후군과 함께 대표적인 독감 백신 부작용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부는 현 단계에서 예방접종은 지속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논의 결과 백신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과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특정 백신에서 중증 이상 반응 사례가 높게 나타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겨울철을 앞두고 코로나 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이른바 '트윈데믹'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 사례 때문에 예방접종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화했을 경우의 결과가 너무나 중대하다면 이를 무시하기보다는 비상계획을 마련해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정부는 만에 하나라도 백신이 접종자들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거나 대규모로 사망자가 나올 경우를 가정해 전면적인 접종 중단까지 포함하는 대처 방안을 염두에는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신속히 백신 접종자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 이를 둘러싼 의구심을 걷어내야 한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국민에게 알려야 할 정보가 있다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때 근거 없는 소문이 기승을 부리고 불안감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지자체가 사망자가 접종한 독감 백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방역당국은 국가 무료접종 백신 유통과 관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신속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이미 신뢰가 상당히 손상됐다. 다시는 이 같은 전철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독감 백신 접종은 1천297만건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국가접종 사업은 836만 건이다. 국가접종 대상은 모두 1천900만명이어서 앞으로 접종해야 할 인원이 1천만명 이상이다. 남은 접종자들 사이에서도 지금과 같은 추세로 사망자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청'으로 승격된 이후 역할이 강화되고 책임이 한층 무거워진 질병관리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대로 입증해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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