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90분간 진행
후보 발언 때 상대방 마이크 끄는 '음소거' 방식
'끼어들기' 안 하고 1차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
CNN "바이든 잘 했다 53%"…1차 때와 격차는 줄어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테네시주 내슈빌 벨몬트대에서 마지막 TV토론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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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전 마지막 TV토론이 22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렸다.
현지시간으로 밤 9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에 시작된 이번 토론회는 두 후보가 두 번째로 직접 맞붙는 자리다. 지난주 예정됐던 2차 토론회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무산되면서 사실상 마지막 토론회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 넥타이, 조 바이든 후보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 넥타이를 매고 토론장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1차 토론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상대방의 말에 끼어드는 일이 없었고, 조롱하는 듯한 표정도 잘 짓지 않았다.
토론 전 바이든 후보의 차남 헌터 바이든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고, 일부 경합지에서 지지율 격차가 줄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이번 토론회에는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지상파와 케이블뉴스 등 거의 모든 방송 채널에서 토론을 중계했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신문사도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토론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이날 토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미국의 가족 ^인종^기후변화^국가안보^리더십 등 6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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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기' 막는 '음소거' 토론
이번 토론회의 특이한 점은 한쪽 후보가 말하는 동안 상대 후보의 마이크를 꺼버리기로 한 것이다. 계속 끄는 것은 아니고 주제별 토론에서 첫 2분 발언을 할 때만 '음소거'를 했다.
인터넷 정치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열린 1차 토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 발언에 끼어든 건 71번, 바이든 후보가 끼어든 건 22번이었다. 서로 말이 엉키면서 토론은 엉망이 됐고 바이든 후보 입에선 급기야 "닥치라"는 말까지 나왔다.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음소거'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 주제 토론 때부터 두 후보는 서로의 발언에 끼어들지 않았다. 바이든 후보는 자신의 검은 마스크를 집어 보이며 "대통령이 마스크 착용만 강조했어도 10만 명의 미국인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고 선공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2분 모두 발언 후에도 서로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각자의 주장을 이어갔다. 폭스뉴스는 "토론위원회가 '음소거' 버튼을 준비했지만, 90분 동안 쓸 일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1차 토론에 비해 상당히 차분해졌지만, 각각의 사안에선 날카롭게 부딪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죽을 뻔한 미국인 220만명의 생명을 자신이 구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가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지금 확진자가 치솟고 있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나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지금 22만 명의 미국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면서 "이렇게 많은 사망자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우리는 전염병을 안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자, 바이든 후보는 "전염병과 함께 죽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받아쳤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M)' 시위 등 인종 문제에서도 두 후보의 입장은 극명히 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BLM 시위대가 경찰에 대한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끔찍하다고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모든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 방에서 가장 덜 인종차별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바이든 후보는 "근대 역사에서 가장 인종차별주의자인 대통령 중의 한 명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역공했다.
22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선 마지막 TV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전략을 바꾼 모습이었다. 상대방의 발언에 끼어들지 않고 특별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으며 사회자의 진행에도 잘 따랐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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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유도' vs '대세 굳히기'
트럼프 측은 토론 전부터 "바이든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전략"을 짰다고 악시오스는 보도했다. 1차 토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나갔던 게 지지율 면에서 좋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바이든에게 말할 기회를 줘서 스스로 실수하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보수 성향의 뉴욕포스트는 바이든 일가가 우크라이나·중국 등 외국 기업과 부정한 이해관계에 얽혀있으며, 차남 헌터 바이든이 마약을 하는 영상 등이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헌터 바이든과 3년 전 사업을 같이했다는 토니 보불린스키가 최근 "헌터 바이든이 중국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받았으며 아버지인 조 바이든도 지분이 있다"는 폭로를 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을 감정적으로 흔들기 위해 보불린스키를 토론장에 초청할 거란 보도가 있었는데, 이날 실제로 나타나 관중석에서 토론을 지켜봤다.
토론 중 아들 의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바이든 후보는 "가족에 대한 의혹 자체가 허튼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실질적인 이슈에 대한 토론을 피하려 한다"고 역공을 폈다. AP는 "양쪽 캠프 관계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헌터 바이든에 대한 이야기가 토론을 지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날 토론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WP는 '음소거' 방식이 효과를 발휘했다며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 간에 합리적이고 예의 바른 토론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악시오스는 "마침내 진짜 토론을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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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바이든이 이겼다"…하지만 1차 때보다 격차 줄어
매번 토론회가 끝나면 긴급 여론조사를 하는 CNN은 이번 토론회의 승자로 바이든의 손을 들었다. 바이든이 이겼다는 응답이 53%, 트럼프는 39%였다. 1차 때에 이어 바이든이 연승을 한 셈인데, 그 격차는 상당히 줄었다. 1차 토론 후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바이든이 이겼다는 응답이 60%, 트럼프는 28%에 그쳤다. 바이든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이 부당했다고 본 이들이 1차 때는 67%나 됐는데, 이번에는 49%로 줄었다. 트럼프 캠프가 미리 짜놓은 '잘 듣기' 전략이 비호감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모습이다.
전국적인 관심 속에 진행된 마지막 TV토론이지만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4200만 명이 사전투표를 마친 상황인 데다, 지난 선거에 비해 부동층의 비율도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을 벌이는 격전지가 있는 만큼 앞으로 작은 실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2016년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이 터졌을 때 민주당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면서 "자칫 예상치 못한 실수로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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