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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회장 별세] 이건희 회장 '신경영'…글로벌 삼성 도약의 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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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프랑크푸루트 선언'…"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1995년 무선전화 화형식 "회사 문을 닫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품질경영 강조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되고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5년째인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루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임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설파한 '신경영' 선언 중 일부다. 신경영은 이날 이후 글로벌 삼성의 뿌리 정신으로 자리 잡아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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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제2대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취임 5년 차인 1993년까지는 이렇다 할 변화를 내놓지 않았다. 1991년에 나온 해외지역전문가 파견제도, 이른바 독신자파견제로 불리던 이 제도 정도가 회장 그의 작품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도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을 대리 참석시키고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세인들은 그를 회장을 '은둔의 황제'라고 불렀다.

은둔의 황제로 불리던 이 부회장은 1993년부터 전면에 나서며 삼성을 수술대에 올렸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삼성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이 부회장의 삼성에 대한 진단은 냉철했다.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환경이 격변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돼야 하지만, 당시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였다.

당시 삼성은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동남아와 국내 시장에서는 성공이었지만, 미국·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질적인 측면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1993년 2월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과 함께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 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취지에서다.

결과는 참혹했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놓여 있었다. 이 회장은 이를 보고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라며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여기에 더해 '세탁기 사건'이 터졌다. 삼성 사내방송 SBC의 사내 고발 영상물에는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잡혔다.

이런 배경으로 같은 해 6월 4일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을 선언했다. 삼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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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의 핵심은 질보다 양에 집중하던 관행을 버리자는 내용이다. 과거 삼성은 질보다는 양에 집중하고 있었다. 경영진의 관심사는 각 부문에서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판매했는지 등의 '지표'였다. 이 회장은 이런 관습을 버리고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제품의 질 혁신부터 단행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대표사례가 라인스톱 제도다.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하도록 했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지키도록 했다. 이런 노력으로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 30%, 많게는 50%까지 줄일 수 있었다.

1995년 3월 이뤄진 '무선전화기 화형식'도 질을 추구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꼽힌다.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제품 불량률은 12%에 달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대해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라며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1995년 1월 이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며 고객들에게는 새 제품으로 모두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이때 수거된 15만대, 당시 돈으로 150여억 원어치의 제품을 소각하며 임직원들에게도 불량의식을 불태우라고 주문했다. 삼성전자 임직원 2000여명이 '품질확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채 구미사업장에서 휴대폰을 해머로 부수고, 불을 붙이며 품질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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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과 함께 조직문화도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로 개편됐다. 사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인프라를 구축하고, 사업구조를 고도화시켰다. 필기시험에는 전공시험 대신 전산 기초지식과 상식, 영어 시험을 도입했다. 또한 채용 학력제한을 철폐하는 등 열린 인사 개혁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품질부터 인사까지 바꾸는 체질 개선으로 신경영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의 뿌리가 됐다. 특히 위기에 앞서 미래를 준비하는 삼성의 현재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본인의 책 '삼성웨이'에서 "대부분 기업 혁신은 위기가 현실화한 이후에 실현되지만, 삼성의 신경영은 위기가 도래하기 이전에 대비하는 성격이었다"며 "예견된 위기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실화했을 때 오히려 혁신이 능동적으로 이뤄져 큰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류혜경 기자 rews@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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