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족 중에 투병을 하신 분이 있나요?"
건강검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 질문의 의도는 '가족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부모의 병을 출생과 동시에 고스란히 물려받는 유전성 질환이 아니어도 암 등의 주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요인'이 우리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가족력을 질병 진단의 주요한 요소로 삼는다. 젊고 건강한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집안 어르신의 병'이 훗날 자신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삼성을 세계 속의 일류 기업으로 세운 이건희 전 회장이 타계했다. 의료계는 이 회장이 살아 생전 유독 폐 질환으로 고생했던 점을 들어 삼성가 가족력인 ‘폐암’과 희귀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를 거론하고 있다.
"삼성가의 자녀들이여, 항상 폐를 조심하라"
삼성가 남성들에게 '폐'는 언제나 소리없이 도사리고 있는 위협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 고(故)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모두 폐암으로 투병한 경험이 있으며, 이번에 타계한 이 회장을 상대로 유산 상속 분쟁을 일으켰던 이맹희 전 회장 또한 2012년 말 폐의 3분의 1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은 전례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건희 회장은 57세였던 1999년, 폐 부근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자 미국 텍사스대학교 암 센터에서 수술을 받았고, 이후 특별히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당시 춥고 건조한 겨울에는 되도록 따뜻한 곳에 머물라는 주치의의 권유로 일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하와이나 일본 오키나와처럼 기후가 따뜻한 지역에 거주하며 경영 노선을 컨트롤 했다.
"선대가 물려준 것, 막대한 재산과 '샤르코마리투스'"
폐가 약한 삼성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질병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샤르코마리투스'라는 희귀질환이다.
샤르코마리투스는 운동신경 및 감각신경이 신경의 축색돌기나 혹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초 단백의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손상되는 병이다. 쉽게 말해 온몸의 근육이 점점 위축돼 힘이 약해지고, 손과 발 등에 변형이 생기는 질환이다. 샤르코마리투스를 앓은 사람은 마치 샴페인 병을 거꾸로 세운 것과 같은 특징적인 기형이 발생하기도 한다.
25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신경계 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는 보통 50%의 확률로 유전된다. 이 질환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부모 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물려받으면 발생하는 것이다. 샤르코마리투스는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삼성의 진짜 적은 그들 몸 속에 숨어있다"
샤르코마리투스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배우자인 박두을 집안 쪽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과 그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 병을 앓고 있으며, CJ 이재현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과거 CJ그룹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이재현 회장이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와 만성신부전증, 고혈압·고지혈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재현의 아들 이선호도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 역시 생전에 샤르코마리투스를 앓으며 목 근육이 약해졌고, 이로 인해 갈수록 섭식이 어려워져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버리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기도에 수시로 무리가 가는 생활이 계속되자 이것이 폐렴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회장의 꺼져가는 촛불을 끈 마지막 바람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샤르코마리투스로 인해 온 몸의 근육이 힘을 잃고, 기도가 혹사당하는 과정에서 기관지는 체내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했고, 짧고 얕은 호흡으로 연명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장은 더욱 약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샤르코마리투스, 그리고 폐 질환이 거인을 쓰러뜨린 나비효과가 된 셈이다.
'불치병' 샤르코마리투스를 앓는 환자는 무중력치료나 전기, 수중치료 등 특수 치료를 통해 근육의 퇴행 속도를 지연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이는 현재로서 알려진 치료법의 전부다.
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 Copyright ⓒ [아주경제 ajunews.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