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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별세- 신세돈 추도사] 초일류국가를 만든 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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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이끈 나라경제의 기적, 국가적인 애도를 왜 아끼는지요

아주경제



[한국을 글로벌 초일류국가로 만든 이건희 회장을 추도함]

1987년 12월 1일 추운 겨울 날, 그 현장에서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으로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세한 이건희 회장이 제2창업을 선언하던 그날입니다.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은 통석(痛惜)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2창업으로 삼성에 찬란한 영광이 돌아오도록 힘차게 전진하자던 말. 그 약속 이상으로 한국을 세계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놓고 떠났습니다. 아직 한창 나이인 78세로 오랜 병고 끝에 여의니, 그를 귀하게 여긴 많은 국민과 함께 깊은 슬픔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일군 것이 아니라 한국을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하게 한 사람입니다. 1980년대 모든 삼성 사무실의 벽에 걸려 있던 삼성 사시(社是)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삼성의 제일목표는 사업보국이었습니다. 사업, 즉 경제를 통해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삼성의 존재이유였습니다. 삼성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서 국가, 즉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것이 회사의 근본 목표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내려온 것이지만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2월 이후에도 지속되어온 삼성의 기둥과 같은 근본철학이었지요. 삼성이 가전과 반도체는 물론 항공, 자동차, 카메라, 화학 등 여러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투자한 것도 돈을 벌자는 목적이 아니라 당시에 취약했던 한국 공업의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장대한 계획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공이나 자동차, 카메라와 같이 많은 부분에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가전과 반도체, 정보통신기기 분야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이끌어냄으로써 삼성 사시의 기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이래 삼성의 주가나 매출, 영업이익이 몇 십 배 혹은 몇 백배 올랐다는 데 놀라지만 진정으로 놀라야 할 것은 그런 수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놀라야 할 대목은 삼성이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재제일(人材第一)! 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초일류 삼성을 있게 한 최고의 수단이었지요. 사업보국이 삼성의 궁극목표였다면, 인재제일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상의 수단이었습니다. 삼성에는 지연이나 학벌, 파벌이 없었습니다. 삼성 임직원들은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창회를 열지 못했습니다. 학벌을 따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방대학 학사 출신의 임원이 놀라울 정도로 많았지요. 삼성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하겠지만 나같이 삼성을 겪어본 사람은 하나같이 학벌이나 지연, 파벌에 휩싸이지 않은 당시 사내 분위기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삼성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만을 보고 채용했고 개인의 잠재성을 보고 거기에 투자했습니다. 내가 한국은행 조사부에서 삼성경제연구소로 옮겨 간 것도, 인재제일을 강조하며 6개월이 넘는 끈질긴 입사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인재제일 정신의 결과가 지금의 반도체 왕국과 디스플레이 제국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삼성 경영문화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위기의 상수(常數)화였지요. 즉, 삼성에는 오늘이 항상 위기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자와 임직원은 항상 닥칠 위기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철학이었습니다. 절대로 실적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정신이었지요. 지나간 실적은 지나간 것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항상 다가올 미래의 실적이었습니다. 경제가 좋을 때는 누가 해도 실적이 좋지요. 문제는 경제가 나쁠 때 좋은 실적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선대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경영인이 위기의식 없이 지난 실적을 가지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제2창업을 선언하며 취임한 1987년 12월 이후 1년도 채 안 되어 한국경제와 삼성그룹은 곧바로 심각한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1989년 들면서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며 성장률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정부의 200만 채 건설정책도 곧바로 시들어버리고 1992년 소비와 투자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총체적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삼성도 예외일 수가 없었지요.

평소 내성적이며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던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사장단 회의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삼성그룹의 일대 전환을 촉구했습니다. 그때 나온 유명한 말이 부인과 자녀를 제외하고 모두 바꾸라는 ‘일체교체’론입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당시 국가 최고인재로 자부하던 삼성 구성원 모두에 대한 통렬한 촉구였고 경고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심의 발로였고, 제2창업을 주도하던 최고경영자의 처절한 요청이었습니다. 신경영이 선언된 지 꼭 2년 만인 1995년 삼성은 휴대폰과 반도체, 가전 부문에서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리면서 화려하게 1992년의 총체적 국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지요. 그 이후로도 이건희 회장 체제 하에서의 삼성은 1997년 IMF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습니다. 국가 수출의 약 30%를 담당하며 한 해 약 1500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사업보국의 귀감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20여개 부문에서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을 지키도록 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이런 이건희 회장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조문에 나서는 것이 걸맞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 치 앞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세계경제가 어려운 데다 국내적으로는 몇 년째 공정경제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반기업적, 특히 반재벌적 정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삼성에 대해 반감을 가진 정치인들은 ‘빛과 그림자’를 운운하며 삼성의 뚜렷한 공로까지 폄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뒷면을 보고 그를 비판하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그의 경제적 공적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못합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이해하고 평가해야 공정한 것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사법부의 공정한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삼성이 이건희 회장 때를 능가하여 세계적으로 더욱더 높이 발돋움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이 회장의 공백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스스로 크게 이뤘으나 그 모든 지혜와 역량을 넘겨줄 수는 없었기에, 이 회장이 가고 난 뒤에 남은 우리 국민과 우리나라가 비상한 각오로 새로운 날들의 걸음을 떼야 하는 일이 중대한 도전과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이 슬퍼하고 많이 걱정하며, 삼가 추도(追悼)의 글을 올립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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