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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치매 할머니 돌보다 살해한 22살 여성 ‘선고 유예’…日 법원이 선처해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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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A씨와 할머니가 살던 주택. 마이니치신문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사회로 복귀하십시오“

90세 친할머니를 살해한 20대 여성 A씨에게 법원이 선고를 유예하며 한 말이다.

법정은 살인을 저지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A씨를 둘러싼 가혹했던 환경을 고려해 선처를 결정했다.

28일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A씨의 비극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계속됐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A씨는 3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얼마 후 어머니가 사망해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이런 A씨를 보살펴 준 건 그가 살해한 할머니 B씨였다. B씨는 가끔 심한 말을 했지만 선생님이 꿈이라던 A씨를 지지하며 지원했다.

하지만 빚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딸(A씨 엄마)이 원망스러웠는지 “넌 빚만 만든 부모에게서 태어난 애”라는 말로 A씨를 힘들게 했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이런 말은 어린 시절 A씨에게 큰 고통이 됐다. A씨는 중학생이 된 뒤 수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급기야 ‘정신 분열’을 겪었다.

결국 A씨는 “고통을 주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이모 집으로 옮겼다.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된 A씨는 점차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아 갔다. 수면제 복용도 하지 않았고 고교와 단기대학(전문대와 유사)을 졸업한 뒤 보육원에 취직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 독립한 A씨에게 지난날 겪었던 불행은 더는 없을 것 같았지만 불행의 씨앗은 A씨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지난 2019년 2월 B씨가 비탈길에서 넘어진 뒤 A씨는 그때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를 돌보게 됐다.

요양 시설 등에서 간호가 가능했지만 전업주부였던 이모는 “할머니 학비를 받았으니 네가 간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치매로 아기처럼 돌봄이 필요한 어머니 간호를 조카에게 떠넘겼다.

다시 동거 후 A씨는 할머니 간병에 온전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 다니던 A씨는 퇴근 후 식사 수발부터 기저귀 교환, 목욕, 간호, 집안일 등으로 수면시간이 불과 1~2시간에 그쳤다.

피곤한 일상에 찌든 그는 직장에서도 잦은 실수로 상사에게 지적받기 일쑤였고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이런 생활이 무리라고 생각한 A씨는 이모에게 힘들다고 털어놨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되레 질책을 받았다. 그러면서 낮에 할머니를 돌보던 도우미와 연락하는 것도 금지했다.

A씨는 이런 생활을 무려 5개월이나 이어갔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이러한 일상이 이어지던 아침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A씨는 수건으로 할머니를 닦아주던 중 심한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를 달랬지만 비난은 그치지 않고 되레 커졌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A씨는할머니 몸을 밀쳤다.

A씨는 그 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뒤 “할머니를 죽였다”고 스스로 신고했다.

사건을 담당한 고배지방법원은 지난 9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할머니를 간호하던 중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심한 빈혈이 있었고, 의사로부터 가벼운 우울증(적응 장애) 진단을 받아 퇴직 또는 휴직을 권유받았다. 또 증인으로 출석한 가족도 모두 할머니를 열심히 돌봤다고 밝힌 것이 판결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적응 장애가 범행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도 “간호로 수면 부족과 업무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폐해져 강하게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모의 뜻에 반해 간호 부담을 줄일 방법도 없었다”며 “자수한 뒤 깊게 반성하고 사회 복귀를 기대할 수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A씨는 보호관찰소를 통해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A씨는 현재 시간제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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