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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2020 미국 대선

트럼프 대선용 ‘백신 거짓말’… 美국민 접종 거부감 키웠다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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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확산에도 “안 맞겠다” 늘어나

‘연내 출시’ 장담 정치화… 관계자 압박

CDC·전문가들은 “내년에나 나올 것”

FDA, 긴급 사용 승인기준 한층 강화

사망 23만 육박에도 58%만 접종 의사

신속승인 안전성 우려… 흑인 불신 커

완전 보급돼도 접종 의무화 논란일 듯

세계일보

미국 대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3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출시 및 접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여러 유세현장에서 “올해 안에 백신 1억개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해왔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한층 강화된 백신 긴급사용 승인기준을 마련하면서 허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울러 종교적 이유 등에 따른 백신 접종 거부를 법률로 차단하려는 주(州)가 나오면서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여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백신의 정치화… ‘양치기 소년’ 된 트럼프 행정부

이번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 출시를 서둘러왔다. 하지만 대선 전 출시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최고 감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지난 25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여부를 11월 말이나 12월 초에는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광범위한 백신 접종은 내년 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책임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3월 초 브리핑에서 “백신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도 불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의 코로나19 환자는 300명 미만으로 환자가 9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할 때다. 그러나 신규 환자가 폭증하기 시작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 출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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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리적으로 백신 출시를 앞당기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 4월 중순 브리핑에서 “백신은 내년 3월쯤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고, 파우치 소장도 5월 초 브리핑에서 “백신은 내년 1월에나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폭스뉴스 타운홀미팅에서 “코로나19 사망자는 올해 10만명까지 늘 수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 백신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장담해, 연내 백신 출시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6만8000여명이고, 현재 사망자는 23만명에 육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백신 연내 개발을 기정사실화했고, 신속 공급을 위해 군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5월 중순 코로나19 백신 초고속 개발팀을 가동했다.

폭스뉴스는 대선을 100일 앞둔 7월 말 “바이든 후보에게 8∼9%포인트 뒤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백신 개발이 거의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까지 가을 백신 출시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미 보건당국은 지난 9월 주지사들에게 11월 1일부터 백신을 배분할 수 있다는 듯한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 백신 배포 소식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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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확산에도 ‘백신 맞겠다’는 미국인 감소

대신 CDC는 최근 각 주에 백신 접종 계획안 제출을 지시했다. 실제 메릴랜드와 메사추세츠, 위스콘신주가 지난 16일 백신 접종 계획 가안을 CDC에 제출했고, 캘리포니아주 등도 최근 계획안을 냈다. 하지만 가안 수정에만 수주가 걸리는 데다 역시 배포 시기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백신 초고속 개발팀을 관리하는 알렉스 아자르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연말까지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2일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에서 “4주 안에 백신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가 사회자가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올해 안에 백신이 나오길 바란다”고 한발 물러섰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라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압박해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 출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이 안전성에 대한 국민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미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폴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가 일일 7만명대에서 3만명대로 반 토막 난 지난 8월 중순, 미국인 ‘10명 중 7명’(69%)이 “백신이 출시되면 바로 접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58%로 뚝 떨어졌다. 특히 흑인의 경우 8월 중순 65%에서 최근 43%로 22%포인트나 줄었다. 하루 8만명대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 등 3차 확산이 닥쳤는데도 백신 접종에 거부감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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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야후 파이낸스가 지난 16∼19일 성인 1046명을 온라인 설문한 결과, 백신 안전성에 대해 FDA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은 30%가 넘었고, 10명 중 4명은 FDA의 신속한 백신 승인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백신이 완전히 보급된다고 해도 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46%였고, 플루나 홍역 등 다른 백신에 비해 더 걱정된다는 응답은 63%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은 여러 개의 백신이 동시에 나오면 스스로 공부해 접종하겠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C)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명에 육박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은 57%에 불과했다. 인종별로는 아시아인이 70%로 가장 많고, 백인(62%), 라티노(54%), 흑인(29%) 순이었다. 아울러 현재 백신 개발 정책이 너무 빠르다는 응답은 6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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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보편화되면 접종을 의무화할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근로자와 학생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60%와 61%로 비슷했다. 10명 중 4명은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회는 지난 20일 11세 이상의 아이들은 의사 소견만으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모 의견과 무관하게 백신 접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미국에서 홍역이 창궐했을 때 부모의 백신 접종 거부로 자녀들이 홍역에 노출된 사례 등에 따른 것이지만 너무 과한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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