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식 가치는 18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만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한다고 해도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인 2021년 4월까지 내야 할 첫해 상속세만 1조8000억원이 넘는다.
결국 상속세 납부를 위해 총수 일가가 보유한 일부 삼성 계열사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재원 마련을 위한 배당 확대 가능성과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까지 얽혀 있어 계열사마다 복잡한 셈법이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높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주가가 강세를 나타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별 주가 향방을 점쳐본다.
▶‘이재용 체제’ 강화 움직임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은 희박
먼저 삼성 총수 일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故 이건희 회장의 지분 상속 문제는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는 물론 삼성그룹 사업구조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故 이건희 회장은 국내 상장사 주식 부호 1위다. 올해 6월 말 기준 故 이 회장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8%)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등을 보유했었다. 보유 주식 평가액만 18조867억원(10월 28일 종가 기준)에 달한다.
상속세법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고, 고인이 최대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면 평가액에 20% 할증이 붙는다. 故 이건희 회장은 앞서 언급한 4개 계열사의 최대주주이거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모두 할증 대상에 해당한다. 이들 4개 계열사 지분 상속에 대한 상속세 총액은 평가액 약 18조원에 20%를 할증한 다음 50% 세율을 곱해 구한다. 여기에 자진 신고에 따른 3% 공제를 적용하면 약 10조5000억원이다.
삼성그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하는 체제를 완성했기 때문에 상속을 둘러싸고 이른바 ‘형제의 난’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故 이건희 회장이 명시적인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이 부회장 승계로 ‘교통정리’가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주식 과반을 상속하고 다른 가족은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 등을 더 많이 상속받을 가능성도 적잖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을 정점으로 ‘오너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IT 계열사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회사가 수직계열화돼 있는 구조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0.7%, 0.06%에 불과하지만 17.3%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故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8%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물려받으면 이 부회장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
다만 당장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이는 적어도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처리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가능한 일이라는 평가다. 더욱이 지난 5월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통해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지배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분할·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 상황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관련 재판, 보험업법 개정, 공정경제 3법 개정 등의 이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상속 후에도 현재 그룹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상속세 마련 위해 배당 확대
▷삼성전자·SDS 지분 매각 가능성도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배당 정책이다. 배당 확대는 천문학적인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오너 일가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故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지난 6년간 이 회장을 포함한 총수 일가가 그룹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 총액은 약 3조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 등 3남매의 연간 배당금 수령액은 2015년 200억여원대에서 2018년 2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8배가량 늘었다. 상속 이후 오너 일가의 연간 세전 배당소득은 7000억원 수준. 매년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의 약 40%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당연히 오너 일가 보유 지분이 높은 그룹 계열사는 2021년 이후 적극적인 배당 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삼성물산(17.48%)과 삼성SDS(9.2%)의 배당 확대 가능성이 점쳐진다. 故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이 부회장에게 상속된다는 가정하에 삼성생명의 배당 정책 강화도 예상된다.
은경완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오너가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보유 지분 매각, 주식 담보 대출, 배당 수취 정도로 요약된다. 문제는 오너 3세들이 보유한 지분가치가 상속세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고, 주식 담보 대출은 한시적 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결국 해법은 보유 회사 배당 확대를 통한 자금력 확보”라고 설명했다.
지분 매각 가능성도 고려 요인이다. 통상 상속 대상 지분이 그룹 지배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회사인 경우 해당 상속 지분에 대한 온전한 확보가 가장 중요한 반면 지배력과 무관한 비핵심자산 성격의 보유 지분은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처분을 고려함으로써 상속세에 대한 재원 확보가 이뤄지게 된다. 삼성SDS나 삼성생명, 삼성전자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 합산으로 이미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한 경우에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해당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궁극적으로 처분 대상 지분의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주가 상승을 도모함으로써 원하는 규모의 상속세 재원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삼성물산 최대 수혜
▷지분가치 반영한 주가 재평가 기대
삼성물산은 이번 상속세 처리 과정에서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지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의사결정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향후 배당 확대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보유한 현금성자산을 적극 활용해 기업가치 증대를 이끌 수 있는 신사업 투자나 M&A에 나서거나 패션 부문 등 비관련 사업 분할을 통한 효율화 개선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면서 이재용 부회장 지분율이 가장 높은 삼성물산의 그룹 내 중요도는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며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12.5%의 활용 방안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편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삼성물산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가운데 건설 등 자체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 삼성전자(지분율 5.01%)와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분율 43.44%) 등 계열사 지분가치가 89.8%로 평가된다. 정대로 애널리스트는 “현재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가치는 역대 최고 수준인데 반해 시가총액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이 약 61%로 확연한 저평가 상태에 있어 지분가치를 반영한 주가 재평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SDS도 상속세 납부와 관련된 다양한 시나리오를 따져볼 때 주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S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다음으로 많은 지분(9.2%)을 갖고 있는 계열사다. 여기에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각각 17.08%, 22.58%씩 지분을 갖고 있어 그룹 내 지분율이 충분한 만큼 이 부회장의 개인 지분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SDS 지분(합산 17.1%)의 일부 또는 전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처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주가를 끌어올려야 그만큼 상속세 재원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 포인트다.
과거에 이미 이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활용한 전례도 있다. 2016년 삼성SDS 보유 지분 2.05%를 매각해 3000억원 규모의 삼성물산 주식과 삼성엔지니어링 자사주를 취득했다. 주가 전망도 긍정적이다. 삼성SDS는 올 3분기 매출액 2조9682억원, 영업이익 2198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어 향후 성장성도 높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단기 하락 우려
▷연말 상속세 확정 전까지 주가 관리?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모두 존재한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상속 주식 평가액은 사망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향후 2개월간의 주가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2개월 이후에는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중요한 상속세 재원 마련 수단이 되기 때문에 주가 상승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 배당 소득 가운데 삼성전자로부터 얻는 배당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3%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2021년 이후 적극적인 배당 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2018~2020년 3년간의 주주환원 정책이 올해로 끝나고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이 곧 결정된다. 매해 고정된 배당액 9조6000억원이 지급되고 추가 지급할 재원이 있다면 배당 혹은 자사주 매입소각 방식으로 환원될 것이다. 주주환원이 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 주가에는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상속받은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그룹 내 특수관계인과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이 행사 가능한 의결권을 넘어섰다는 관점에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15%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내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은 총 20.9%로, 허용치를 넘어서는 5.9%의 지분율에 대해서는 어차피 의결권이 제한된 만큼 현금화를 염두에 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에도 삼성전자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상속받은 삼성전자 일부 지분에 대한 매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경우 상속받은 삼성전자 지분을 다 매각하고,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계열 분리 수준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생명 지분, 전량 단독 상속 예상
▷보험업법 개정안이 변수
삼성생명은 그룹 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지분율 8.51%)로, 故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76%는 전량 이재용 부회장의 단독 상속이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이 0.1%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故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전량 상속되지 않는다면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2대 주주 삼성물산(19.34%)이 최대주주에 올라선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상 복잡한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된다면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삼성생명의 배당 확대 가능성이 높다. 즉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 지위 승계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확보와 더불어 배당수입까지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생명 주가에 더 큰 변수는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 이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 이내로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8% 가운데 5.5%가량을 처분해야 한다.
이때 삼성그룹이 택할 만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팔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구도로 가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43.44%) 일부를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삼성전자에서 받은 돈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해 지배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지배구조가 단순화될 수 있다.
은경완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RBC(지급 여력) 상승, 자본 규모 증가 등 자본 여력은 개선되겠으나, ROE(자기자본이익률)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익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각에 따른 배당 규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82호 (2020.11.04~11.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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