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관 최초 ‘똥’ 주제 삼아
광목천에 물들인 ‘똥염’ 작품부터
염소똥으로 만든 애완 염소까지
작가 23명이 똥의 미학 선보여
나종희 작가의 신작 <자본의 똥>(2020). 패널 위에 콜라, 커피 등 각종 음료수의 현란한 상호들이 인쇄된 알루미늄 캔 조각들을 기워 붙여 똥 모양의 조형물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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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염’.
김인규(58) 작가가 최근 똥을 소재로 만든 신작 <아버지와 아들>의 제작 기법을 요약한 말은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어감으로 들린다. 그는 자신의 똥과 20살 넘긴 아들의 똥을 각각 물에 풀어 놓고 광목천을 물들여 염색 천 작품들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네모진 캔버스의 천 표면에 은은하게, 심심하게 갈색과 누른빛이 연한 얼룩처럼 갈마들면서 빚어내는 색면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김 작가는 2000년 임신한 부인과 자신의 알몸을 찍은 누드사진 작품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교사직에서 해직되면서 표현의 자유 논란을 예술계에 점화시켰던 사건으로 미술판에 회자되는 아티스트다. 그는 요즘 똥으로 작품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누드사진을 찍었을 때 아내가 임신했던 아이가 작품 속 아들입니다. 성인이 됐지만, 발달장애가 있어서 지금도 제가 똥을 닦아주고 관장도 해줘야 합니다. 날마다 친근하게 아들 똥을 만지다 보니 똥도 확실히 내 몸의 일부구나 절감하지요. 전시장에 작품을 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좋았어요. 20여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애가 눈 부드러운 똥을 화폭에 발라 작품을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작업실에 불이 나 작품이 불타버렸거든요. 과거의 아들에 얽힌 기억과 역사, 지금의 아들과 나를 다 돌아볼 수 있는 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기현 조각가의 2009년 작 설치조형물 <대안이>. 자신이 정성껏 키우던 염소 대안이의 똥을 모아 대안이의 상을 빚어냈다. 상을 놓은 평상 모양의 좌대 상판에는 대안이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생각을 담은 글을 올리고 조명으로 밝혀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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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연한 사연을 지닌 김 작가의 신작을 서울 인왕산 기슭 부암동 고지대에 있는 자하미술관의 기획전 ‘똥이 꽃이 되는 세상’에서 감상하게 된다.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 똥을 주제로 삼은 전시다.
똥은 일반인들에겐 더럽고 피하고 싶은 배설의 흔적이지만, 현대미술 작가들한테는 시대 상황을 풍자하거나 존재의 의미 등을 성찰하는 매체나 재료로 종종 활용된다. 이런 똥의 미학을 작가들의 각양각색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김인규 작가 외에도 주재환, 김정헌, 정복수, 임옥상, 민정기, 이종구, 유근택 등 작가 23명이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똥 작업들을 놓거나 내걸었다. 부패한 군 장성 ‘똥별’들이 볼일을 보는 임옥상 작가의 익살스러운 상으로 시작하는 전시장은 작가마다 색다른 개성과 재기를 발산하는 기발한 맥락의 똥 작업들로 채워졌다. 원로 전위미술가 성능경씨는 지난 7~10월 사이 80일간 자신이 볼일 보고 닦은 휴지를 매일같이 디지털 이미지로 찍고 편집해 일종의 뒤처리 흔적의 이미지 일기를 만들었다. 방정아 작가는 똥덩이들이 건물에서 삐져나와 해안가와 바다로 흘러가는 꿈을 형상화했고, 류준화 작가는 제주 설문대할망이 똥을 누어 제주 오름을 만드는 신화적 과정을 대작의 그림 속에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다. 농민화로 유명한 중견 리얼리즘 작가 이종구씨는 밤하늘에 부처가 눈 돌덩이 똥이 서울 도심 야경 위로 내려오는 초현실적 풍경을 그려냈다. 정기현 조각가는 자신이 정성껏 키우던 염소 대안이의 똥을 모아 빚어낸 2009년 작 설치조형물 <대안이>를 내놓았다. 과식하고 바지에 똥을 싼 기억을 담은 서찬석 작가의 천 글씨 작품은 전시장 말미에 놓여 젊은 예술가가 처한 서글픈 실존의 상황을 털어놓는다. 존재의 일부이자 상상력의 원천으로 등장하는 출품작들 속 똥의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 삶과 몸을 다시금 성찰하게끔 이끄는 전시다. 22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김인규 작가의 2020년 작 <아버지와 아들>.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 아들의 똥을 작가 자신의 것과 함께 물에 풀어 광목천 위에 염색한 ‘똥염’ 작품이다. 똥은 사람 몸의 일부이며 관계까지 표상한다는 작가의 사유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실현된 수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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