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이 제시한 에너지 정책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추진해온 에너지 정책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바이든 당선자의 공약에 나타난 정책 기조는 신‧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미국의 대선 결과는 자국 내 석유산업은 물론 글로벌 석유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석유를 수입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고자 했다. 석유산업 지원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제들을 완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해상유전 개발 규제 완화다. 석유와 가스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에 대한 배출 규제도 완화했다. 또 기업평균연비제도(CAFE)를 통해 연비 규제 목표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트럼프가 폐기한 화석에너지 개발 규제와 자동차 연비 기준 등을 복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방공유지에 대한 신규 석유개발도 금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기업들에 대한 바이오연료 혼합비율 의무도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송유관 등 추가적인 화석에너지 인프라 건설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원유가격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바이든에게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바이든이 트럼프가 파기한 이란핵협정(JCPOA)에 복귀하고 이란에 대한 원유수출 제재를 철회할 경우, OPEC+(OPEC 및 러시아 등 산유국) 감산 공조 체제가 약화될 수도 있다.
한편 바이든이 제시한 에너지 관련 분야의 공약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두드러진다. 2035년까지 발전 부문의 탄소 제로 배출과 2050년 미국 전체의 탄소 배출 제로가 목표다. 바이든은 집권 후 4년 동안 2조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엔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환경 의무를 지키지 않는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 탄소조정세를 부과도 거론한 적이 있다. 탄소조정세 부과가 현실화된다면 국제 통상의 새로운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석유산업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자국 내 석유산업과 글로벌 석유산업에 대해 비우호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석유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간 내에 파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을 바꾸기 위한 법률 개정과 제도 변경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등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석유산업이 미국의 경제와 정치에서 가지는 위상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글로벌 석유산업의 여건은 변하고 있었다. 주요 국가들은 이미 에너지전환 정책을 통해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에너지에 의존해온 에너지 공급 체계를 풍력‧태양광‧지열과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에너지 공급 체계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는 그런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함에 따라 세계 석유수요를 당초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둔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석유수요의 둔화는 석유제품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직면한 위기다. 국내 석유기업들은 변화하는 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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