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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개 키우면 3000만원, 못 박으면 50만원" 갑질 특약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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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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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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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 보일러감가상각비 연당 30만원, 1년에 1회 세대점검 거부시 500만원…"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임대인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 과도한 위약금과 계약갱신권 포기 등의 내용을 특약사항에 넣는 식이다. 당장 살 곳 마련이 급한 임차인의 선택권은 많지 않다.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된 임대차법이 임대인은 물론이고 임차인까지 곤경에 빠뜨린 꼴이다.

서울 성동구 일대에서 전셋집을 알아보던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계약을 진행하려던 중 집주인이 중개업소를 통해 들이민 A4용지 한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특약사항이었다. 주택임대사업자인 집주인은 10가지 특약을 모두 지킬 수 있다면 세입자로 들이겠다고 했다.

특약사항에는 위약금, 손해배상금, 갱신청구권 포기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집주인이 제시한 위약금 및 손해배상금은 △애완동물 금지 위반시 3000만원 △벽걸이TV 금지 위반시 500만원 △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 △보일러 감가상각비 1년당 30만원 △청소비 70만원 △도배비 200만원 △바닥(마루등)1년 당 30만원 등이다.

여기에 1년에 1회 임대인이 세대점검하는 데 동의해야 하며 거부 시에는 500만원, 퇴거 시에는 6개월 전부터 집을 보여줘야하며 거부시에는 회당 500만원을 보상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세입자로서 주택임대사업자 자진말소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는 조건, 주택임대사업자 말소(자진말소 포함) 시에는 퇴거한다는 조건, 이때 임대법상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용한 것으로 동의하겠다는 조건도 붙었다. 사실상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하는 내용을 특약에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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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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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처럼 심각해진 집주인들의 갑질 행태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으로 분석된다.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서 전세 매물이 대폭 줄어든 가운데, 전셋집을 찾는 수요는 여전하니 집주인이 '슈퍼갑'이 된 것. 계약갱신청구권을 고려해 기본 4년(2+2) 만기로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집주인 입장에서 갖는 피해의식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민우 법무법인YK 변호사는 "법이 갑자기 바뀌면서 임대차 거래와 관련된 문의가 많아진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사안의 경우, 주택임대사업자이기 때문에 주변 다른집들만큼 전세보증금을 많이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4년 계약에 대한 불만 등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제시한 특약사항 대부분이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계약을 진행한다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그대로 지켜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변호사는 "감가상각비, 청소비 등은 굳이 임차인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지만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동의했다고 본다"며 "다만 위약금, 위약벌 부분은 현저하게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소송을 하게 되면 감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은 무효로 볼 수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정향 변호사는 "특약을 하면 구속되는 것은 원칙이지만, 임차인이 행사하지도 않은 계약갱신요구권의 행사를 미리 포기하게 하는 문구는 임대차보호법에 배치되므로 합의하더라도 무효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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