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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市녹지는 아파트 짓게 해주고, 민간 땅은 공원 묶고… 서울시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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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사업은 원하는 대로, 민간엔 까다롭게 ‘용도 변경’ 내로남불

152억짜리를 4427억으로 바꿔 판다

서울시가 현재 ‘자연 녹지’로 돼 있는 시 소유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주차장 부지(1만9600㎡)를 550가구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준주거용지’로 용도변경한 뒤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의회 임만균 의원(더불어민주당·관악3)에 따르면 이 땅은 감정가가 현재 152억원인데, 용도변경 이후에는 4427억원으로 가치가 29배 부풀어 오른다. 개발할 수 없는 땅을 주상 복합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시는 현재 서울숲 옆에 있는 삼표레미콘 공장이 2022년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그 자리를 공원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려면 삼표레미콘 터 주인인 현대제철에 약 4000억원 안팎을 줘야 하는데, 그 땅값을 마련하려고 주차장 터를 변신시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에서 용도변경 신청하면 공공에 기여하라며 까다롭게 조건을 붙이더니 시 소유 땅은 손쉽게 용도를 바꾼다” 며 ‘이중 잣대’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숲 주차장 터는 이 일대에서도 가장 알짜 부지로 꼽힌다. 이 땅은 서울숲과 접해있는 데다 주변에 내년 입주를 앞둔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와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등 초고가 주상 복합 단지가 즐비하다. 시가 민간에 땅을 매각하면 초고가 주상 복합 단지가 또 하나 들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 분양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는 크기가 작은 97㎡ 분양가가 집값 급등 직전인 3년 전에 17억4100만원이었다. 이 단지는 지난 5월 세 가구 잔여분에 대해 추가로 무순위 청약을 받았는데 “분양만 받으면 10억원이 차익”이란 평가에 26만명이 몰릴 정도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새 단지가 들어선다는 게 알려지면 현금 부자들이 당연히 관심 가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최근 “시민들이 공원을 원한다”면서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소유 땅과 부영이 소유한 용산구 한남동 한남근린공원 터 등을 잇따라 매입해 공원으로 활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과 비교해 ‘내로남불’이란 지적도 많다.

대한항공이나 부영 모두 자체적으로 자기 땅 개발에 나서려 했는데, 서울시가 공원 부지로 지정하면서 졸지에 시에 매각할 수밖에 없어 재산권을 제약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두 곳뿐만이 아니다. 김경 서울시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에 따르면, 민간이 소유한 땅을 서울시가 공원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현재 58건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공원 부지로 지정되면 시가 그 땅에 대해 개발 인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라 사실상 서울시를 빼면 그 땅을 살 사람이 없게 된다”며 “개발 가능한 민간 땅은 공원 용지로 지정해 값을 떨어뜨리고 시 소유 녹지는 개발 가능한 준주거용지로 바꿔 가치를 부풀리는 건 내로남불이자 횡포 행정”이라고 했다.

서울숲 주차장 터를 주상 복합 부지로 바꾸는 것을 두고 법적 분쟁이 벌어질 조짐도 나온다. 주차장 땅 바로 옆에 부영이 47층짜리 1107실 규모 호텔과 340가구 규모 아파트 두 동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부영 측은 “2009년에 땅을 3700억원이나 주고 샀는데, 바로 옆 주차장 부지에 건물을 올린다는 말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바로 옆에 주상 복합이 또 들어서면 서울숲이나 한강 전망이 나빠지고, 일조권이 침해당하면서 교통난도 우려된다는 점 때문에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법적 대응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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