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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김광일의 입] 선봉에 떠밀린 추미애, ‘정권의 정적’ 윤석열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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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기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그런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맨 처음 했다. 2017년5월 취임식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옛 어른들이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정말로 우리는 문 대통령 말마따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를 줄줄이 겪고 있었는데, 어제도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어제 추미애 법무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첫째 “징계를 청구”하고, 둘째 “직무집행 정지를 명령한다”고 했다. 오늘 아침 거의 모든 신문들이 “헌정 사상 초유(初有)의 일”이라고 했다. 초유, 처음 겪는다는 뜻, 그러니까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절차로 추 장관은 이제 검찰총장을 상대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는 일을 벌일 것이고, 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했으니 직무를 대행하는 대검 차장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고 할 것이다.

추 장관은 연말 개각을 앞두고 문 정권을 향해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 유임일까, 교체일까, 말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추 장관은 청와대를 향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그러니까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인 법무장관이라는 오명(汚名)까지 무릅썼으니 다음은 문 대통령이 알아서 나를 배려해달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서울 시장 후보 경선에 나설 수 있게 해줄 것, 혹은 정세균 총리 다음에 총리 후보로 생각해줄 것 등등을 고려해달라는 뜻이 전달됐을 것이다. ‘추다르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는 비유가 있었는데, 아마 여권 사람들도 놀랐을 것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혐의를 6가지나 조목조목 열거했다. 그러나 오늘 동아일보 사설은 “그 내용들이 이미 알려졌던 내용들을 중대한 비리처럼 규정하거나 추 장관 측이 일방적으로 주장해온 것을 얼기설기 엮은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사례를 보면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중 사건 관계자인 JTBC의 실질 사주 홍석현을 만나 부적절한 교류를 했다.” 자, 윤석열과 홍석현 두 사람이 ‘부적절한 교류’를 했다는 것인데, 문맥상 엉뚱한 오해는 없으리라고 본다. 일부 사람들은 윤 홍 두 사람이 만났을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그리고 JTBC의 태블릿PC 사건 등이 있었다고 말한다. 즉 두 사람이 술집에 가까운 밥집에서 밤늦게 만났는데, 우연히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고 노래도 부르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홍석현 회장 입장에서는 중요 현안이었던 태블릿PC 사건과 삼바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자리를 주선한 것이라는, 정황상 부적절하다는 식의 혐의를 씌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만 지적하겠다. 윤석열·홍석현 둘의 만남에 관한 얘기는 이미 다 알려져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뒤늦게나마 추 장관이 그 사실을 빌미로 징계를 청구할 만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면, 작년 7월 윤석열 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때 그 점을 지적했어야 했고, 그래서 문 대통령한테 윤석열 총장 임명을 반대했어야 했고, 아니면 올해 초 자신이 법무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그 점을 지적해서 대통령한테 해임 건의를 했어야 옳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러니까 누가 봐도 ‘보복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한 이 시점에, 그리고 윤·홍 둘의 만남이라는 사실만 거론했을 뿐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나쁜 만남’이었다는 식으로, 국민들의 상상력만 자극하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징계 논리를 펴는 것을 보면 추미애 장관이 한때 법을 공부했고, 법관이었던 사람이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조국 사건’ 때 그리고 ‘울산 시장 사건’ 때 재판부 등을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말이 안 되는 대목이다. 추 장관은 자기가 “불법 사찰”이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무조건 “불법”이 되는 줄로 착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직 법무장관인 조국 씨가 관련된 사건, 그리고 대통령의 30년 지기이자 울산 시장 선거 사범인 송철호 씨가 관련된 사건, 검찰총장으로서는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살아 있는 권력 중에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게 됐는데, 이런 사건들이 어느 재판부에 할당되는지, 그리고 어떤 판사들이 이 사건을 맡게 됐는지 주시하는 것을 두고 사찰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추 장관은 국민들을 현혹하기 딱 좋게 “재판부 불법 사찰”이라는 말을 썼다. 마치 윤석열 총장이 판사들의 뒤를 캐기라도 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 대목에서 추 장관은 두고두고 책임을 져야 하는 발언을 한 셈인데, 만약 불법 사찰이라는 혐의가 전혀 사실 무근으로 밝혀질 경우 추 장관은 거꾸로 ‘무고(誣告) 혐의’를 벗을 길이 없어 보인다.

추 장관은 또 채널A 사건과 한명숙 사건과 관련해서 윤 총장이 측근을 비호했다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징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채널A 사건과 한명숙 사건은 온 국민이 지켜봤던 내용들이고, 이미 법원에서 판결까지 완결된 사건들이다. 추 장관이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뭔지 알 수 없으나, “측근 비호”라는 혐의 역시 우리는 쉽게 납득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추 장관이 열거한 6가지 ‘윤 총장 비위 혐의’ 중에 남는 것은, 우리가 팩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난주에 윤 총장이 ‘대면 감찰 조사’에 불응했다는 것 정도인데, 법무부에서 감찰관도 모르게 감찰담당관이 평검사급 2명을 보내 총장을 대면 감찰하려다 불발에 그쳤다는 그 과정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추 장관은 당초에 윤 총장 감찰에 착수하면서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것은 윤 총장이 라임 펀드 사기 사건과 관련해서 ‘야당 정치인 수사를 방했다’는 것이고, ‘검사 비위를 알고도 은폐했다’는 것이고, 옵티머스 펀드 사건에 대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수사 의뢰를 무혐의 처분했다’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정작 어제 밝힌 여섯 가지 징계 사유에는 그런 의혹들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추 장관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별것이 없으면 아무 말도 없이 뭉개버리는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인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올해 2020년은 경자(庚子)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미애 장관이 “경자 사화(士禍)”를 일으키고 있다는 말도 한다.

윤석열 총장은 추 장관의 직무 배제 명령을 위법하고 부당한 조치라고 규정하고 “끝까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검찰징계위원회는 오로지 법무장관의 전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검찰징계위는 법무장관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구성이다. 따라서 징계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윤 총장이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직무 배제 상태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추 장관은 징계위원회의 결과에 따라 윤 총장의 해임을 대통령한데 건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 있다. 최근 이낙연 민주당대표, 그리고 정세균 총리 등이 추 장관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일제히 거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낙연 대표는 “윤석열의 혐의가 충격적”이라면서 “국정조사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 청와대에서 추 장관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윤 총장을 밀어내려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에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돈 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 지시로 몰아냈었다. 그 뒤에 앉힌 사람이 윤석열 중앙지검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미애 법무를 통해서 윤 총장을 몰아내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리고 어제 추 장관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 총장의 장모인 일흔네 살 최모씨에게 의료법 위반과 사기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권 보호, 그리고 사정기관 장악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정 사상 처음 겪는 초유의 무리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 문 대통령은 여전히 비겁하다. 참 비겁하다. 이번 사태를 보고받았다면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법무장관의 직무 집행 정지 명령은 발동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임이라고 볼 수 있는 조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추 장관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고도 별도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총장 임면권을 가진 문 대통령은 침묵하고, 추 장관은 윤 총장을 해임하는 모양새다. 자신의 칼에는 피를 안 묻히고 정권의 최대 정적(政敵)으로 부상한 윤 총장의 목을 베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것으로 문 정권이 윤 총장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제 무덤을 파고 있다고 보십니까. 앞으로 윤 총장의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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