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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더오래]치매 아버지 뜻 무시하고 정신병원 입원시킨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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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64)



“왜 주위 사람들이 내가 바라지도 않는 일을 시키려고 하는지 이상했습니다. 장래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내 기분을 마음대로 상상해 내가 그러고 싶어한다고 단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화를 못 하니까 내 생각을 추측해 말해야 할 일도 있겠죠. 그러나 그 말이 내 기분을 따른 것이었는지는 나만이 알고 있습니다. (중략)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상처를 받습니다. 내가 주변의 돌멩이 같은 존재입니까? 단지 주위 사람의 의견만으로 움직여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자신의 의사를 모든 사람처럼 전할 수 없는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어렸을 때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전할 수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시키고 싶어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자폐증을 가진 미야모토 아몬씨는 그의 에세이에서 자기 결정을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 에세이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떤 심정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12년 당시 일본에서 의사결정지원 문제를 논의할 때 이 에세이는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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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복지 서비스 이용에 관한 지원계획을 수립할 때 치매에 걸렸거나 심각한 지적 장애가 있는 경우 그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사진 piqs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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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고령자가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권리 침해상황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다운 생활방식을 선택하고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지원 제도를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이용자 중심으로 점검하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나 사회에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법제도와 지원체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의료 복지환경에서 고령자와 장애인의 자율을 보장하기 위한 의사결정지원에 초점을 둔 대책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간병보험제도와 장애·복지 서비스의 지원제도가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당사자의 의사에 근거한 지원보다 간병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과 주변 가족의 보호적 관점이 중시되고 있다. 가족과 지원자가 “객관적으로 필요하다”고 평가하는 지원방침에 따라 제공하는 실정이다.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고려하는 과정은 배제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간병·의료지원 상황을 살펴보자. 간병·복지 서비스 이용에 관한 지원계획을 수립할 때 치매에 걸렸거나 심각한 지적 장애가 있는 경우 그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지원자와 가족이 환자의 건강과 안전 등을 배려한 플랜을 세운다. 가족이 서비스 이용 계약자가 되거나 비용지급을 위한 금전관리를 대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가 사망한 장애인의 독신생활은 불안하다고 해서 계속 자택생활을 원하는 당사자의 의향을 묻지 않고 시설 입소를 검토한다. 독신 고령자의 치매상태가 진행되면 이웃과 먼 친척이 불안하기 때문에 시설입소와 입원을 추진하기도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거주지 결정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환자의 의사결정을 반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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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판단능력을 지원하기 위해 선임된 성년후견인도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시설의 퇴소 계약을 거부해 지역사회로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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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녀는 치매 고령자인 아버지를 정신과 병원에 입원시켜 수년 동안 입원생활로 치매증상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아버지가 치매로 인해 기억력이 떨어져 말한 것을 금방 잃어버리기 때문에 무엇을 말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결정해버린다. 실제로 아버지는 대화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데도 자녀는 아버지의 의사를 생각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다.

친척이 없는 치매 고령자가 말기 암 상태에서 남은 기간을 자택에서 보내고 싶어한다. 자택에서 간병하려면 간병보험의 지급금액을 초과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때 친척의 동의나 협력이 없다면 퇴원하지 못한다. 자택에서 최후기를 맞이하고 싶은 환자의 간곡한 희망을 주변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입원 후에 정신질환이 안정되고, 더 이상 입원의 필요성이 없고 약 복용도 줄어들었다. 보호자인 형은 동생이 소유한 자택을 관리하면서 퇴원하고 싶어하는 동생의 간절한 바람을 허락하지 않은 채 수십 년간 사회적 입원을 시키고 있다.

환자의 판단능력을 지원하기 위해 선임된 성년후견인도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후견인이 환자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의사에 반해 직무를 수행한 사실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시설에 거주해온 치매 환자는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부친 사망을 계기로 선임된 보좌인이 지역생활의 위험을 걱정하고 시설의 퇴소 계약을 거부해 원하는 지역사회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 환자는 보좌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다. 부모의 유산분할과 어려운 법적 판단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후견개시를 신청한 사람도 있다. 그 후견인은 일상생활에서 모든 금전관리와 계약에 관한 판단권한을 갖게 되었다. 환자 본인은 일상적인 금전관리와 간병에 필요한 사항은 주변 사람과 상담하면서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후견인의 지시를 받아 관리해야 하고, 주변의 지원자도 후견인의 판단을 우선하게 되었다. 유산분할이 끝난 후에도 본인 혼자서 관리하고 싶어도 후견인과 가정재판소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치매와 지적 장애라는 이유로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환자 본인의 이익이라는 미명 하에 제3자의 판단으로 결정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치매환자 삶의 방식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가 어떤 의사결정의 표시를 해도 객관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며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주변에서 환자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체념한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결정하는 능력 자체를 빼앗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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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에서 의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도 의사결정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어떤 지침도 없기 때문에 가족이 대행해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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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국가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율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결정을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도이념과 규범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고 있다. 치매환자나 지적 장애인의 생활에 관련된 사람이 의무적으로 필요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률도 미비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체제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등한 계약관계에서 의사결정 지원을 의무화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의료현장에서 의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도 의사결정이 어려운 환자에 대한 어떤 지침도 없기 때문에 가족이 대행해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신과 병원에 장기간 입원 중이거나 장애인 입소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이동하고 싶을 때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지침도 없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사결정은 현재 스스로 표명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고려되고 있다. 그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객관적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존중될 수 없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25년 일본에 65세 이상 5명 중 1명은 치매 고령자가 생활하는 사회가 될 전망이다. 치매 고령자가 전체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당연히 치매 고령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제도는 공생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판단능력이 충분하지 않는 사람을 사회생활에서 배제하고 보호하는 관점보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의사결정 지원체제로 전환하도록 의사결정지원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에서 의사결정의 지원형태는 더욱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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