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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5월 광주 헬기사격 있었다”… 전두환 1심 집유 2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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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명예훼손 혐의 유죄 판결

故 조비오 신부 목격 증언 비난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 바탕

진실공방 2년6개월 만에 일단락

全 10분 만에 졸다 선고 뒤 퇴장

자택 출발 전 “사과하라” 요구에

“말 조심해 이놈아” 소리치기도

세계일보

전두환 전 대통령(앞줄 왼쪽 두번째)이 30일 광주지법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80년 5월21일 헬기사격이 있었습니다.”

30일 광주지법 201호 형사 대법정에서 열린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재판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자행됐다며 유죄 판결했다.

전씨가 2017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기간 군이 헬기 사격한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지 2년 6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김 부장판사는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전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전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목적살인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지 23년 만에 5·18과 관련해 또다시 처벌을 받았다.

재판부는 80년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돼야 한다. 헬기사격이 입증돼야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전씨의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주장을 허위사실로 보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 신부의 당시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 신부가 1980년 이후 사망할 때까지 500MD 헬기가 있었고 호남동 성당에서 목격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헬기 소리 표현은 달라지고 있으나 오히려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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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30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관련 단체 회원 등이 전두환 구속 촉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뉴스1


재판부가 80년 5월 21일 헬기 사격의 증거로 전교사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을 들었다. 김 부장판사는 “1978 육군항공 교범에는 탄약 높은 소모율이 있다. 이 문서는 항공교범의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지만 교훈집 전체 내용상 실제 헬기사격 있었다고 전제로 상황 분석한 것이 타당하다. 유력한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도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국과수의 5·18 당시 항쟁 근거지인 전일빌딩 탄흔 분포 형태의 분석을 보면 10층의 탄흔은 UH에 장착된 M60기관총에서 발사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재판은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가 있다. 80년 5·18 직후부터 1988년 광주 청문회, 1995년 특검까지 헬기사격은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결과와 2017년 5개월 동안 활동한 국방부 헬기사격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헬기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정부 보고서에 이어 이번 사법부까지 헬기 사격을 인정해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번 재판에서 헬기 사격이 입증되면서 그동안 시민군에 맞선 자위권 발동이라는 신군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재판부도 “계엄군이 5·18 기간 광주시내에서 헬기 사격을 했다면 전씨의 자위권 발동을 무색하게 하고 국군이 시민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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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 선고공판을 받은 30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부상자회 소속 회원들이 전 전 대통령 일행 차량을 붙잡자 경찰들이 차 주위를 애워싸고 있다. 뉴시스


전씨는 이날 재판 시작 10분 만에 꾸벅꾸벅 졸다가 선고 후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법정 밖에서는 재판 내내 시민들과 오월단체의 “전두환을 구속하라”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42분쯤 부인 이순자(82)씨와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 광주로 향했다. 검정 양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온 전씨는 차에 타기 전 자택 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택 앞에 있던 시위대가 ‘전두환을 법정구속하라’, ‘전두환은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치자 “말조심해 이놈아”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이종민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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