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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기자칼럼]‘여론’의 뜻을 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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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로배구에는 프로야구에 없는 ‘신선한’ 규정이 있다. 대회운영요강 제48조 인터뷰 조항이 그것이다. 이 조항은 “대진팀의 두 감독 및 요청 선수는 당연 인터뷰 대상이며, 경기 직후 패한 팀 감독은 소속구단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기자실에서 인터뷰에 응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패한 팀 감독의 인터뷰를 의무화한 것인데, 프로야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규정이다. 프로야구 정규시즌 기간에는 이긴 팀 감독의 짤막한 승리 소감이 홍보팀을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될 뿐, 경기 후 패장 인터뷰가 없다. 반면 프로배구는 패한 팀 감독과 이긴 팀 감독, 이긴 팀 수훈선수를 차례로 인터뷰하게 된다.

경향신문

최희진 스포츠부


프로야구는 진 팀 감독의 불편한 심기를 배려하느라 패장 인터뷰를 하지 않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기가 끝난 뒤 심기가 가장 불편한 사람은 감독이 아니라 패한 팀의 팬들일지 모른다. 프로배구는 감독이 경기를 왜 그렇게 운영했으며 왜 패배했는지를 취재진을 통해 팬들에게 설명하도록 한다. 프로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팬이라는 것을 프로배구는 잘 알고 있다.

올 시즌 프로배구는 2005년 출범 이후 여론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스타’ 김연경이 11년 만에 국내로 복귀해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선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배구 예선 도중 욕설을 해 ‘식빵언니’라는 별명을 얻었고, 국내 복귀 후 입단 인터뷰에선 “첫 월급으로 고급 가방을 사겠다”는 등의 농담으로 취재진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김연경의 이런 화끈한 스타일이 화근이 됐다. 그는 경기 도중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자 공을 바닥에 내리치고 네트를 잡아당기면서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가 도마에 올랐다. 이 정도 표현은 용인될 수 있다는 옹호도 있었지만 김연경이 오만했다는 비난도 컸다. 한국배구연맹이 당시 김연경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던 심판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사건은 더욱 커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사건 이후 김연경의 태도다. 김연경은 국내 복귀 전까지 연봉 세계랭킹 1위였고, 전 세계 배구계가 인정한 슈퍼스타였다. 기고만장해도 될 이유가 충분히 많은 선수다. 이런 김연경이 “논란이 일지 않도록 자제하겠다”며 겸허히 몸을 낮췄다. “(비난이 거세) 힘들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버티려고 노력했다”는 심경도 털어놨다. 그는 여론에 귀기울여 자신을 성찰하는, 프로스포츠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스포츠 스타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인격적 완벽함을 요구하는 여론의 잣대가 온당한 것인지는 물론 별개의 문제다. 사실 최고 수준의 도덕성을 갖춰야 하고 여론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집단은 세금으로 밥벌이하는 공무원일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공무원들도 여론을 살피기야 하겠지만 각자에게 편리한 여론만 취하면서 경주마처럼 내달리고 있다. 서초동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에 스트레스 받는 시민들에게 김연경의 시원한 스파이크가 잠깐의 도피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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