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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자작나무 숲] 찬장은 찬장이고 바람은 바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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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못 쓰면 소설 쓰고, 소설조차 못 쓰면 평론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로 말하면 시도, 소설도, 심지어 평론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도 소설도 평론도 안 한다면 남는 것은 공부인데, 그 공부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론과 분석보다 감상(鑑賞이자 感賞) 쪽에 기울어간다. 그냥 순하게 잘 읽는 것, 음미하고 이해하고 감동하는 것이 문학 공부의 최고봉이라 여겨진다. 학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주문도 맘껏 자유롭게 읽고 생각한 바를 쓰라는 말이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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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기본이고 중요할진대, 예상외로 쉽지 않다. 주로 시험을 위해 책 읽어온 학생들이다. 그들에게는 단어마다 의미가 숨어 있고, 의미는 하나로 정해져 있다. 단 하나뿐인 정답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찾는 일에 익숙해졌고(수능), 어떻게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지도 훈련받았다(논술).

‘개념’의 좌표도 뚜렷하다. 실제 삶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역사관은 진보적이고, 도덕관은 순결주의에 가까우며, 문학관은 정의로운 메시지를 추종한다. 옳고 그름의 판정에 가차 없다. 그러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의 용사들인 그들이 썩 자유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탈을 피한다. 틀릴까 봐, 튈까 봐 겁내며 주위에서 큰 소리로 자주 들어온 상투어를 따라 한다. 뜻밖의 오답은 거기서 비롯된다.

가령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라는 네루다의 시구가 있다. 노동자 민중을 대변한 공산당원 시인에 대해 미리 알아본 학생 입에서는 대번 찬장=칠레, 거품=사회주의라는 등식이 등장한다. 시인은 실제 바닷가 집을 풍경으로 자연과 사랑과 시의 ‘충만한 힘’을 기리고 있는데 말이다. 순간 시가 죽는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타자 ‘저항시인’에 대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밥 딜런 자신은 ‘저항’이란 단어를 일찍이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직한 마음으로 그 말을 할 때 딸꾹질이 나올 것이다. ‘메시지’라는 말은 치질에 걸린 것처럼 들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에서 반전·평화의 메시지만 찾는 순간, 노래는 죽는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눈보라 몰아치는 시베리아 빈집에서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 땅과 하늘과 구름과 나무가 더 원하고 기뻐한 사랑이었다. “눈보라는 유리창에/ 원과 화살을 조각한다./ 촛불은 탁자 위에서 타올랐다./ 촛불은 타올랐다… 서로 얽힌 팔, 서로 얽힌 다리,/ 서로 얽힌 운명” 운운하는 ‘겨울밤’ 시가 나오는데, 도덕으로 무장된 우리 학생들은 불륜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의 현장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영혼의 구원과 희망, 우연과 의지의 상징성 등등을 거창하게 나열한다. 순간 사랑이 죽는다.

이렇듯 순진하게 오염된 집단 독법에 브레이크를 밟는 일로 수업의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균형을 맞추려다 보수·진보·리버럴·탐미주의가 뒤범벅된 기이한 ‘꼰대’ 꼴이 되는 적도 있다. 내 정체성이 하나의 틀로 고정되지 않아 힘들다고 고백할 때 학생들은 웃는다. 선생이 솔직하면 받아들이고 용서한다. 문학에서, 그리고 물론 삶에서 정답이란 없는 법이니, 예단하고 심판하기보다 이해하자고 하면 수긍한다. 위대한 시와 소설(특히 역사소설)이 가르치는 것은 이분법이 아니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똑똑한 학생들의 자동화된 언어와 지각 체계를 뒤흔들 필요가 있다. 그것은 습관을 뒤집고, 편견이 된 좌표를 지우고,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즉 오직 자신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격려하는 일이다. 강요된 ‘정답’에 대해서는 잊어도 좋다고 안심시키는 일이다. 저항과 투쟁의 메타포나 이념의 상징성 이전에, A=A라는 뻔하고도 놀라운 진실을 먼저 확인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문학은 상식적이고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읽는 문학이 상식과 자유를 지켜준다. 요즘처럼 정신 잃은 시대에는 제정신의 보루 역할도 톡톡히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교단 위의 권위를 이용하여, 이렇게 한번 속삭여본다. 여러분, 찬장은 찬장이에요. 내가 무엇을 물어도 바람은 제멋대로 불기만 하죠. 답은 없어요. 이 겨울밤 촛불 아래서 저들이 뜨겁게 사랑하고 있네요. 그뿐이에요.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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