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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美 77명 코로나로 숨질 때, 베트남은 0.04명… 선진국 허상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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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삶, 세계 知性에 묻다] [5]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영국·미국·프랑스처럼 한때 제국이었고, 자만심 있는 나라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 크게 당했다. 사회적 우선순위를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전제가 깨진 것이다.”

조선일보

장하준 교수는“최근 유엔 화상회의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10여 명과 함께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재건을 주제로 토론했다”면서“책 읽고 연구하고 글 쓰는 평소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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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57)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영국은 10만명당 81명, 미국은 77명이 죽었는데 베트남은 0.04명에 불과하다”면서 “선진국의 허상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난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장 교수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직업인 간호사, 요양원에서 일하는 분들, 음식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팔고 배달하는 분들이 모두 저임금 노동자”라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을 사회적 목적에 맞게 통제하고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서구권에서 더 심각하다.

“동양·서양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권에도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뉴질랜드 등은 확진자가 적다. 큰 나라들이 자만한 것이다. 소국(小國) 의식이 있는 한국이나 핀란드처럼 항상 위기를 겪고,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나라가 오히려 잘 대처했다. 베트남⋅에티오피아⋅르완다 등 후진국 중에서도 코로나 통제를 잘한 나라가 많다.”

-서구에선 마스크 쓰기를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마스크 쓰기는 음주 운전 금지라든가 안전벨트 착용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가짜 뉴스로 인해 마스크를 써도 효과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불평등이 늘어나고 정치권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쌓여 이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으려 한 때문이다.”

조선일보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어렵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세계 경제 성장률이 -2%였는데 이번에는 -5% 예상한다. 경기 침체가 보건 문제와 얽혀 있어 돈 풀고 구조 조정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노동 집약적 산업은 생산 방식을 바꾸거나 기계화·자동화해야 한다. 재택근무가 늘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뒤집힐 것이고, 대중교통 수단도 재조직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 파급효과가 있다. 이번 사태로 복지나 노동법이 잘 보장되어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인식이 퍼졌다. 미국은 유급 병가도 거의 없고, 실업보험 타기도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들이 아픈데도 직장에 다니며 코로나를 퍼뜨렸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당장 경제 위기도 극복해야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경제와 사회를 재조직할 것인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까지 30~4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시장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가치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있다. 누가 돈을 많이 벌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에 보니까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키 워커’(key worker·핵심 노동자)들이 의사 빼고는 다 저임금 노동자였다. 시장을 사회적 목적에 맞게 통제해야 한다. 돌봄 경제 또는 재생산 경제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번 사태는 사회가 재생산되어야 생산도 할 수 있고, 여성들의 가사 노동을 비롯해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가서 일하고 돈 벌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정 형태일 뿐이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더 좋지 않았다. 1950~1970년대 조금 더 규제가 많았던 혼합 경제 시대에는 세계 경제가 1인당 소득 기준으로 평균 2.6% 성장했는데 1980년대 이후 1.5%로 떨어졌다. 실업률과 불평등도도 훨씬 올라갔고, 금융 자유화를 너무 하다 보니 걸핏하면 금융 위기가 난다. 이번 일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기본 전제들이 많이 깨졌다.”

-코로나로 인해 양극화가 더 진행될 것 같다.

“경제 위기가 일어나면 불평등이 증가하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코로나가 더 어려운 점은 대면 접촉이 필요한 직장들이 대부분 저임 직장인데. 그 분야가 제일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이걸 시장에 맡기면 불평등은 더 증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복지 확대를 시작해야 한다.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가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한가.

“기본소득을 찬성하지는 않는다. 보편적 복지를 한다고 해서 그걸 다 현금으로 나눠주는 건 아니다. 인간이 살면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태어나서 교육받아야 하고, 취직해야 하고, 또 실업할 수도 있고, 결혼하고 아이 키워야 하고, 살다 보면 병도 나니까 의료보험도 있어야 하고, 늙으면 연금도 있어야 한다. 그런 일들에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게 보편적 복지다.”

-온라인 교육이 늘면서 경제적 약자가 교육 약자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다른 건 닫아도 학교는 열어야 한다. 집에서 공부할 환경도 안 좋고, 가난한 애들은 집에 있으면 밥도 못 먹는다. 정부가 돈을 대서 가정환경이 어려워 공부에 지장 있는 아이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서 그동안 못 한 걸 메워줘야 한다. 온라인 교육에 필요한 컴퓨터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이번에 뒤처진 아이들은 안 그래도 힘든데 더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다.”

-코로나가 큰 정부를 가져오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의견이 있다.

“코로나 통제를 잘한 나라들이 통상적 의미에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괜히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정부를 신뢰하면 믿고 따를 것이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정부를 못 믿으면 왜 내 자유를 침해하느냐는 식으로 가게 된다. 정부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미국은 그런 신뢰가 없으니 음모론과 가짜 뉴스에 휘둘려 오히려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인류가 배워야 할 점은.

“우리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기후변화다. 브라질이 아마존 숲을 밀어내면, 북극 얼음이 빨리 녹고, 영국 바닷가 집들이 떠내려가고, 미국에 허리케인이 온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가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더 절실히 깨닫게 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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