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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계타워] 秋 ‘尹 찍어내기’ 의도에 대한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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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명분으로 한 조치, 수단·절차 정당성 갖춰야

1985년 서슬 퍼런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춘천지방법원에 부임한 한 초임 판사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불온 서적 유통 혐의를 받는 서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부당한 청구라며 기각했다. 그 판사는 지금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곧잘 불리는 그의 강단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추 장관의 남다른 면모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두드러졌다. 2004년 3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 당시 추 장관은 당초 민주당 지도부 중 유일하게 반대입장을 보이다 표결을 앞두고 찬성으로 돌아섰다. 이어 국회 탄핵 가결 후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하는 역풍이 불자 서울지역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자로 만들 정도”라고 주장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등 돌린 호남 민심마저 돌아오지 않자 광주를 찾아 삼보일배했다. 무릎이 찢어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투쟁방식으로 꺼내들곤 하는 삭발·단식투쟁에 비할 수 없는 결의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참패였고, ‘추미애 책임론’도 불거졌다.

세계일보

엄형준 사회부 차장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 일어서는 비범함을 보였다. 5선 국회의원이자 집권여당의 대표를 역임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현 정부에 들어 법무부 장관설이 돌 때는 ‘집권여당 대표까지 했는데 총리면 몰라도 장관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는 기꺼이 조국 전 장관의 바통을 물려받았다. ‘기승전 검찰개혁’을 외치는 청와대와 민주당, 여권 지지층의 기대도 한껏 받았다.

추 장관은 확실히 기대에 부응했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인사권을 수차례 휘둘러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쳐내며 검찰을 장악해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가 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윤석열 찍어내기’를 노골화하고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엇나갔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조치들은 검찰개혁의 목표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마저 해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추 장관이 급기야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초기 ‘윤석열 라인’과의 대립 구도는 검찰 조직 전체와 맞서는 구도로 바뀌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검찰총장을 징계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순 없다. 그러나 이는 수단과 절차의 정당성을 갖췄을 때 얘기다. 이미 윤 총장 가족과 측근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다른 의혹들도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추 장관의 전격적인 직무배제 조치는 의도에 대한 의심만 키운다.

때때로 과거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2004년 추미애의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내렸고 민심은 등을 돌렸다. 내가, 우리 편이 옳다고 믿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다.

총장 직무배제 사태가 일자 ‘특수통’ 중심의 자기 사람만 챙긴다며 윤 총장에게 거부감을 보이거나 일선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던 검사들까지 추 장관에게 반기를 들었다. 법원은 총장 직무배제 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고,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징계 부적정 의견을 냈다. 이들 모두가 윤 총장의 편이고, 청산해야 할 적폐인가.

그럼에도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멈출 뜻이 없어 보인다. 올겨울,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듯싶다.

엄형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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