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을 위해 의사가 환자에게 위약을 주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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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사회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등은 5일(현지시간) 미 보건당국이 과거 흑인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의학 인체 실험을 한 역사 탓에 정부가 배포하는 백신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 공영라디오방송(NPR)은 4일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조사를 인용해 흑인 사회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42%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질문에서 백인(63%), 라틴계(61%), 아시아계(83%) 응답과 비교하면 20~40%포인트 낮은 수치다.
NPR, CNN 등은 흑인 사회가 미 공공 보건정책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이유로 그동안 의학·보건 연구에서 자행된 인종차별과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1932년부터 무려 40년간 이어진 ‘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공중보건국은 대공황 시기인 1932년 앨라배마의 유명 흑인대학교 터스키기 연구소와 공조하여 비밀 생체 실험을 시작했다. 보건당국이 매독 치료를 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흑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감행했다. 이들이 매독이나 합병증을 앓아도 치료하지 않아 결국 실험 중 7명이 매독으로, 154명은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매독, 빈혈, 피로증을 합쳐서 일컫는 지역 방언인 ‘나쁜 피(bad blood)’를 치료한다고만 말했다.
CNN은 이같은 어두운 역사 때문에 흑인 대다수가 백신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하이오주에 사는 흑인 카르멘 베일리는 올해 4월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과거 경험 탓에 의료 기관을 되도록 이용하지 않았다고 CNN에 말했다. 그는 심장, 폐, 신장 등 여러 장기에서 코로나19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지만 “지금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은 (실험용) 기니피그처럼 보인다”면서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CNN이 만난 다른 흑인 주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앨라배마주 홉슨시티 주민인 흑인 남성 조 커닝엄(85)도 “백신에 대해서 모르고 이해도 못 하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한다”면서 코로나19 백신이 나와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 주민인 칼튼 고던(34) 역시 “아직 확실히 입증되지도 않은 백신에 연연하지 않겠다”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배포돼 효능이 입증되면 관점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필수의약동맹연합회 세르나 에시앙은 미 NBC뉴스에 “백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백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동안 의료시스템에서 제도적 인종차별이 만든 균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전체 코로나19 확진자 중 40%가량이 흑인과 라틴계다. 지난해 미 인구조사국 기준 미국의 흑인 인구 비율이 전체의 13.4%, 라틴계 18.5%인 것을 감안하면 흑인·라틴계가 코로나19 확진 비율이 높은 상황이다.
CDC는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저소득 라틴계, 흑인 집단을 코로나 취약 집단으로 분류하고 이들 인종의 대가족 고령자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우선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사회에서 팽배한 백신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유색인종 지도자들이 직접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최근 백신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면 카메라 앞에서 직접 백신을 맞겠다고 공언했다. 인권 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 등 저명한 흑인 목사 6명 역시 흑인 사회에 코로나19 교육, 검사, 백신 배포 확산을 위한 단체를 출범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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