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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변화 맞은 인도의 결혼·사랑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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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호화 결혼식 사라져…'방호복 예식'도 등장

보수 힌두교도는 다른 종교 간 결혼·사랑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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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인도 갑부 무케시 암바니의 딸 이샤 암바니(왼쪽). [연합뉴스TV 제공. CG]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 힌두교도의 결혼식은 화려함으로 유명하다.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연회와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본예식에 앞서 신부를 위해 마련되는 축하연 '산기트'(sangeet)가 화려하다.

2018년 12월 아시아 최고 갑부 무케시 암바니가 딸을 위해 마련한 산기트에서는 팝스타 비욘세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암바니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 세계 각국에서 온 하객을 수송하기 위해 100여 차례 전세기를 띄워 화제를 모았다.

본 예식은 며칠 뒤 뭄바이의 암바니 가문 저택에서 따로 열렸다.

현지 언론은 신랑 신부 가문이 이 결혼식에 최대 1억 달러(약 1천80억 원)를 쓴 것으로 추산했다.

암바니 같은 부호가 아니더라도 재력 있는 인도인은 결혼식을 위해 호텔이나 리조트를 통째로 빌리기도 한다.

결혼식 규모가 가문의 체면과 직결된다고 여기기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예식에 쏟아붓는 것이다.

인도의 연간 결혼식 산업 규모는 무려 500억 달러(약 54조3천억 원)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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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후인 6월 인도 보팔에서 진행된 결혼식 모습. [EPA=연합뉴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런 결혼 문화가 큰 변화를 맞았다.

감염을 우려한 당국이 결혼식 하객 수 등을 제한하면서 올해는 간소한 결혼식이 대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에서 지난 11월 결혼한 한 부부는 애초 1천 명의 하객을 초청하려 했다가 80명으로 줄여야 했다고 최근 CNN방송은 보도했다.

직접 집을 방문하면서 이웃과 하객을 초청하는 문화도 없어졌다. 이메일 초청 카드가 이를 대신했다.

먼 리조트나 해외에서 열리는 결혼식도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친지의 집이나 신랑·신부의 집에서 가까운 호텔 등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와중에 이달 초에는 북서부 라자스탄주에서 신부가 결혼식 직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예비부부와 신부의 아버지 등이 전신 방호복을 입고 식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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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직전 코로나19에 확진돼 방호복 차림으로 식을 치른 인도 부부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코로나19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결혼과 사랑 방식에서 변화를 겪는 쪽도 있다.

보수 힌두교도들로 인해 종교가 다른 이들 간의 결혼과 사랑에 지장이 생긴 것이다.

인도 인구의 종교 비중을 살펴보면 힌두교도가 80%가량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의 비중은 각각 14%, 2%에 그친다.

이처럼 힌두교도의 비중이 크고 카스트에 따른 결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 힌두교도와 타종교도 간의 결혼이 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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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인도 벵갈루루에서 '러브 지하드' 관련 법을 반대하는 시위대. [EPA=연합뉴스]



그런데도 극우 힌두교도들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결혼을 노골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이른바 '러브 지하드'(Love Jihad)라는 억지 용어를 들이대며 젊은이들의 사랑을 간섭한다.

이들은 무슬림 남성이 결혼을 통해 다른 종교를 믿는 여성을 강제로 개종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행동이 이슬람 성전을 뜻하는 지하드의 하나라는 것이다.

일부 힌두교도들은 엄포에만 그치지 않고 '러브 지하드'를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힌두교도가 다수인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가 대표적이다.

우타르프라데시주는 최근 '결혼을 통한 불법 개종'을 강요한 이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에는 현지 경찰이 법 위반을 이유로 10여 명의 남성을 체포하면서 타 종교 간 결혼을 사실상 막아선 분위기다.

우타르프라데시주는 연방 정부와 마찬가지로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인도국민당(BJP)이 장악했으며, 총리는 힌두교 승려 출신 요기 아디티야나트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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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드라마 '수터블 보이'의 한 장면.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극우 힌두교도 정치인들은 드라마 속 장면에까지 시비를 걸었다.

최근 넷플릭스가 현지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수터블 보이'(A Suitable Boy)가 이들의 타깃이 됐다.

드라마는 힌두교도인 여성이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무슬림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힌두교도들은 특히 여성 주인공이 힌두교 사찰을 배경으로 남성과 키스하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이와 관련해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경찰은 넷플릭스의 간부를 입건해 조사하기도 했다.

마디아프라데시주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이어 '러브 지하드'법 도입을 추진 중이다.

앞서 인도 유명 보석 업체인 타니시크는 지난 10월 종교를 초월한 결혼을 그린 광고를 내보냈다가 힌두교도의 항의로 중단하기도 했다.

언론인 주그 수라이야는 타임스오브인디아에 쓴 칼럼에서 최근 '러브 지하드' 관련 상황이 우려된다며 "앞으로는 많은 인도인이 '러브 지하드'로 인해 고발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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