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 4시간 마비, 대목 장사 망쳐
그런데 배달이 접수된 지 30분이 지나도록 배달원이 오지 않았다. 포장해둔 전은 차갑게 식어갔다. 결국 7시가 넘자 “왜 안 와요? 그냥 취소할게요”란 전화가 왔다. 양씨는 부랴부랴 직접 전을 들고 고객 집으로 뛰었다. 이상하게도 이후로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양씨는 “평소 주말에 30만~40만원 정도 배달 매출을 올리는데, 크리스마스 대목이라 식재료는 그보다 훨씬 많이 준비해둔 상태였다”고 했다. 결국 양씨는 이날 이 주문 한 건으로 ‘크리스마스 장사’를 공쳤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에서 이날 오후 6시쯤부터 4시간가량 서비스 오류가 발생하며 크리스마스 대목을 기대하던 전국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봤다. 오류가 지속하자 배민은 아예 이날 저녁 앱에서 ‘배민라이더스’ 주문 메뉴를 삭제해 버렸다. 고객들의 주문 창구가 사라진 것이다. 24일 회원 수 60만의 인터넷 자영업자 카페에는 “주문이 안 와 오후 7시에 억지로 문을 닫았다” “음식은 만들었는데 3시간째 배달 출발을 못 하고 있다” “손님에게 취소하라고 전화하고 내가 그냥 먹고 있다” 등 자영업자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배달의민족이 25일 내놓은 보상안은 자영업자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음식을 주문했지만 취소된 고객들에겐 일괄적으로 쿠폰 3만원을, 배달 일을 하지 못한 배달원들에겐 현금 6만원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에겐 ‘실제 주문이 됐다가 취소된 건에 한해 음식값을 보상해주고, 25일 하루의 주문 중개 수수료를 면제해주겠다’고 했다. 중개 수수료는 음식값의 16.5%다.
자영업자들은 “아예 배달을 막아버려 주문 자체가 안 됐는데, 대목 장사를 공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 “피크타임 매출 몇백만원을 날렸다” 등 격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대구 남구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김성두(28)씨는 “오후 5시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주문이 3건뿐이라 배달 매출이 4만원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오후 7시 넘어서야 ‘조속히 정상화하겠다’고 달랑 문자가 와서 그 말 믿고 오후 9시에 홀 영업이 종료되고도 전 직원이 남아 있었다”면서 “복구됐다는 오후 10시 반 이후에는 배달원들이 다 퇴근했는지 배달 가능한 곳이 없다고 나오더라”고 했다.
배달의민족이 고객과 배달원들만 신경 쓰고, 자영업자들은 ‘찬밥’ 취급하는 것은 철저한 갑을(甲乙)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얘기다.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배민의 점유율은 63%. 합병을 추진 중인 배달앱 ‘요기요’(29%)까지 합치면 90%가 훌쩍 넘는다. 코로나로 ‘배달 주문’이 기본이 된 상황에서, 배달앱들이 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이날 피해를 본 전집 업주 양씨는 “화가 나 배달의민족에 전화를 걸어 더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상담원이 ‘그러면 지금까지 쌓은 별점과 고객 리뷰가 모두 사라진다’고 해 결국 전화를 그냥 끊었다”고 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8)씨는 “코로나 때문에 배달 주문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라 이런 피해를 봐도 우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서비스를 계속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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