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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러시아와 서방의 이중간첩으로 활동하며 서방 진영에 수차례 피해을 끼친 악명 높은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가 98세로 사망했다.
26일(현지 시각) 러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해외정보기관인 대외정보국(SVR) 대변인은 이날 블레이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대외정보기관 MI6 요원이기도 했던 블레이크가 공산주의자로 전향해 러시아에 충성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다.
그는 1948년 주한 영국 대사관의 부영사 직함을 갖고 서울에서 북한, 중국, 동아시아 지역 소련의 정보를 수집하고 첩보체계를 다졌다. 그러다 6·25 당시 다른 외교관들과 함께 북한 인민군에 잡혀 3년간 평양부터 압록강까지 끌려다니며 포로생활을 했다.
블레이크는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북한 민가 폭격을 보면서 소련과 공산주의 쪽으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했다. 블레이크는 “거대한 미군 폭격기들이 북한의 조그만 마을들을 인정사정없이 공습했다”며 “젊은 남자들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여자, 어린이, 노인들이 마을에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블레이크가 3년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탐독하고 북한에 억류돼 있으면서 공산당의 세뇌를 받은 것이 전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생전에 블레이크는 이를 부인했다.
6·25 이후에도 겉으로는 MI6에서 동독 내 첩보조직을 지휘했지만, 동유럽에서 활동하는 M16 첩보원 400명의 신원을 소련에 넘기는 등 실제로는 소련의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이 동베를린으로 통하는 지하터널에 군사용 도청장치를 설치한다는 ‘베를린 터널 작전’에 대한 기밀을 빼돌렸다. 소련은 이 정보를 이용해 미국과 영국에 역정보를 흘려보내는 도구로 1년 넘게 활용했다.
블레이크는 결국 1961년 소련 간첩이라는 사실이 발각돼 징역 4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1966년 동료 죄수들의 도움으로 탈옥한 후 소련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은 그를 반역자로 여겼지만, 그는 평생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을 영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배신을 하려면 먼저 거기(영국)에 속해야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거기에 속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소련에 이어 러시아에서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중령 출신으로 연금을 수령하는 등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은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2007년 블레이크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블레이크의 사망 소식을 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탁월한 전문가이자 빼어난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서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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