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9 (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앨범 시장 역대급 호황, K팝 팬들은 왜 '환경'을 말하나…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하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많이 팔린 앨범 400개의 총 판매량은 4026만장으로 2018년 대비(2459만장) 64% 가량 증가했다. 이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강윤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026만장. 지난해 많이 팔린 앨범 400개의 판매량(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다. 2018년 대비(2459만장) 무려 64% 가량 증가한 수치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2003년 이후 가장 높다. 하지만 앨범 산업의 ‘역대급 호황’을 바라보는 일부 K팝 팬들의 표정은 어딘지 씁쓸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환경 파괴범이 된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무슨 사연일까.

“앨범을 몇 십장 산 다른 팬들의 ‘언박싱(개봉기)’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이건 아니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이선씨(18)는 앨범 산업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스, 비닐, 에어캡, 지관통… 앨범을 뜯을 때 나오는 쓰레기 양도 양이지만, 분리배출이 불가능한 재질이라는 것도 문제다. 포토북이나 CD같은 ‘기본 구성품’은 열어보지도 않고 쌓아두는 경우도 많다.

앨범을 많이 사지 않는다는 신씨도 한 번에 3~4장씩은 사는 편이다. 같은 앨범이라도 포토카드같은 구성품은 ‘랜덤 배송’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뽑으려면 여러 장을 구매해야 한다. 신씨는 “앨범을 사는 목적이 포토북과 포토카드를 얻기 위한 게 되다보니 앨범 구성도 점점 더 화려해지는 추세”라며 “그럴수록 분리배출은 더 어려워지고 배출되는 쓰레기 양도 많아지게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

2020년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K팝 앨범들. 순서대로 방탄소년단 <맵 오브 더 소울 : 7>, <BE>, 세븐틴 <헹가래>, NCT <레조넌스 파트1>, 블랙핑크 <디 앨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사들은 랜덤 구성품의 종류를 늘리거나, 같은 앨범을 포장만 바꾸어 여러 버전으로 발매하며 구매를 유도한다. 팬사인회 등 각종 이벤트 응모권도 앨범 구매량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한 앨범을 100~200장씩 사는 팬들도 흔하게 볼수 있다. 앨범 판매처인 ‘파워스테이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임효은씨(22)는 “캐리어를 가져와 50~60장씩 사가는 사람도 자주 봤다”며 “앨범 한 장당 응모권 한 장을 주기 때문에 앨범을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올라간다. 무작위 추첨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팬들을 구매량 순으로 줄세우기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구매한 앨범은 결국 ‘처치곤란’ 신세가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녀시대, 엑소, NCT, 더보이즈 등 다양한 K팝 가수들을 좋아했다는 임씨의 방 한 켠엔 앨범들을 모아둔 박스들이 쌓여있다. 임씨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만 두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일부 팬들은 중고거래나 무료나눔 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쓸모’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2017년 일본에서는 30대 남성이 걸그룹 AKB48의 앨범 585장을 야산에 버렸다가 쓰레기 무단 투기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앨범에 동봉된 ‘총선거’(싱글앨범 활동 멤버를 결정하는 팬투표) 투표권을 위해 앨범을 구매했다는 이 남성은 “일반 쓰레기로는 처분이 곤란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경향신문

한국보다 앞서 음반 시장 호황을 맞았던 2017년 일본에서는 한 30대 회사원이 걸그룹 AKB48의 앨범 585장을 구매한 뒤 악수회 응모권만 빼고 야산에 버렸다가 쓰레기 무단투기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ANN방송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사들에게 앨범 판매량은 팬덤의 충성도와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음원의 경우 수익의 35%를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져가지만, 실물 앨범은 유통사에 지불하는 돈이 적기 기획사의 수익률이 더 높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콘서트와 퍼블리싱(노래방) 수익이 급감하면서 기획사들의 앨범수입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며 “최근 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은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쪼개는 등 판매고를 높이는데 집중돼있다. 환경파괴 측면에서 이를 자정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앨범시장 초호황의 씁쓸한 이면”이라고 했다.

팬들 역시 앨범 판매량을 아예 무시할수는 없다고 했다. ‘밀리언셀러’, ‘더블 밀리언셀러’라는 타이틀이 가수들의 인기를 증명하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신씨는 “가수들의 성적이 좋아야 소속사에서도 꾸준히 컴백을 시켜주고 지원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라며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 기간이 얼마 안남았는데도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면 팬들끼리 구매를 독려하기도 한다”고 했다.

은지영씨(31)는 “이윤을 내야 하는 기획사 입장도 이해가는 측면은 있다”면서도 “멤버 수만큼 앨범 버전을 다르게 만들거나 앨범 판매량과 연동해 팬사인회 응모권을 판매하는 등 과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앨범 구성품을 간소화하거나 분리배출이 가능한 재질로 바꾸는 등 제작 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에는 ‘키트 앨범’(스마트폰에서 구동가능한 앨범)처럼 디지털화된 형태의 앨범도 등장하고 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